- 프로야구 선수들마다 제각각

박종훈, 몸풀기전 독서로 힐링
로맥, 정오되면 무조건 사우나
유희관, 등판땐 정해진 속옷만
손아섭·최정, 경기전에 ‘쪽잠’
박한이, 타석서 배트로 선긋기

염경엽감독, 루틴 개발 지시
“좋은 기억 반복하는 게 중요”


SK의 잠수함 투수 박종훈은 등판 당일 루틴이 수십 개나 된다. 취침은 오후 7시. 집을 떠나 야구장에 도착하면 항상 주차하는 곳에 차를 대고, 라커룸으로 가는 ‘여정’도 같다. 투수조 미팅을 마친 뒤에는 잠시 짬을 내 책을 읽는다. 그리고 스파이크를 신을 땐 무조건 왼쪽부터 신는다. 캐치볼은 13번 한 뒤 잠시 휴식하고, 다시 13번을 한 뒤 마운드에 오른다. 경기 개시 전 섀도 모션은 20회. 다른 사람이라면 기억하기조차 힘들지만 박종훈에겐 익숙한 루틴, 일과다. 박종훈은 “루틴을 본격적으로 익힌 2017년부터 술술 잘 풀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면을 긁다시피 공을 던지는 박종훈은 2017년 처음 10승 벽을 넘어서 12승(7패)을 거뒀고 지난해엔 14승(8패)을 올렸다.

NC 내야수 박민우는 집에서 반드시 ‘큰 볼일’을 처리하고 야구장으로 간다. ‘출근길’에 커피를 사서 손에 들고 라커룸에 도착한다. 야구장에서 ‘작은 볼일’을 볼 경우엔 화장실 왼쪽에 있는 변기만 사용한다.

두산 투수 유희관은 선발 등판까지 4∼5일 동안 아예 공을 손에 쥐지 않는다. “힘을 빼기 싫다”는 게 이유. 유희관은 등판하는 날엔 꼭 정해진 ‘속옷’만 입는다.

‘쪽잠’은 인기 루틴. 롯데 외야수 손아섭, SK 내야수 최정 등은 경기에 앞서 10∼15분 잠을 잔다. 손아섭은 “경기 전 조금이라도 잠을 자는 게 컨디션 조절에 가장 좋다”면서 “늘 하던 ‘계획표’에 따라 움직이는 게 경기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루틴은 경기 도중 팬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삼성 외야수 박한이가 대표적이다. 박한이의 동작엔 한 치의 오차가 없다. 늘 배트를 옆구리에 끼고 장갑을 조이며 타석에 들어선다. 왼발로 땅을 판 뒤 헬멧을 벗어 땀 냄새를 맡고 다시 쓴다. 그리고 배트로 홈플레이트 앞쪽에 선을 그은 뒤 배트를 세우고 엉덩이를 턴다. 이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 끝나야 타격 자세를 잡고 투수와 승부한다. 박한이는 데뷔한 2001년부터 ‘박한이표’ 루틴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외국인 선수도 예외는 아니다. SK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은 원정을 떠나면 달라진다. 정오가 되면 무조건 사우나로 향한다. 오후 1시가 되면 밥을 먹고, 2시에는 커피 체인점에서 ‘오늘의 커피’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 로맥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면서 “루틴은 경기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루틴이 됐다”고 설명했다. 홈경기를 앞두고도 거르지 않는 ‘행사’가 있다. 로맥은 “홈인 인천에서는 가족과 함께 있기에 변수가 많아 따로 루틴을 만들지 않지만, 아침에 커피는 꼭 마신다”고 덧붙였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은퇴한 일본인 스즈키 이치로의 루틴이 유명하다. 2001년 메이저리그 진출 후 홈경기를 앞두고 그는 아내가 만든 카레라이스를 꼭 먹었다, 원정에선 페퍼로니 피자를 먹은 뒤 야구장에 갔다. 이치로는 20년째 같은 메뉴를 고집했다. 미국 언론은 “뇌와 위가 익숙해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치로만의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염경엽 SK 감독은 지난해 마무리캠프에서 루틴을 개발하라고 선수단에 지시했다. 염 감독은 “어떻게 공을 쳐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야 하는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 루틴”이라면서 “좋았을 때를 기억해 그것을 반복하는 게 중요하고, 성공한 선수들에겐 어김없이 루틴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루틴 = 컴퓨터 프로그램 용어지만 스포츠에선 자신만의 고유한 훈련법, 일과 등을 뜻한다.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고, 바라던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 스스로 정한 ‘패턴’에 따른다. 승부의 세계에서 루틴은 믿고 기댈 수 있는 종교이자 신념이다. 일과를 분 단위로 짜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예도 있다. 루틴으로 잡념을 방지하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프로야구에선 선수들 개성만큼이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루틴이 존재한다.
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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