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 존 바그 지음, 문희경 옮김 / 청림출판
때로는 의식보다 앞서서
사고·행동 결정하는 기제
내면의 욕구가 신념 굳혀
선거·정치갈등까지 좌우
의식 - 무의식 상호작용 틀
잘 갖추면 바른 결정 가능
맑은 날씨가 부지불식간에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은 물론 투자자의 주식 거래량까지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심지어 갓난아기도 무의식적으로 같은 인종을 더 좋아한다는 내(內)집단 선호 경향이 입증됐고, 동안(童顔)인 범죄자가 형량을 낮게 받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우리의 무의식이 일상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무의식 전문가로 통하는 저자인 존 바그 미국 예일대 교수는 지난 40년간의 연구로 밝혀낸 인간 행동의 비밀을 보여준다. 우리가 무의식과 의식의 영향을 언제, 어떻게 받는지, 언제 의식을 쓰고 무의식을 써야 하는지를 다양한 실험 사례를 통해 일러준다.
미국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경쟁이 치열하던 2016년 공화당 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면서 의도적으로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향해 “역겹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의도는 자명하다. “역겹다”는 말을 통해 대중이 무의식적으로 클린턴을 피하게 하고, 신체적 안정성을 상실했다고 느끼게 하려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신체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정치적 메시지에 날카로워지고 보수적 성향을 띠게 된다고 한다. 이는 결국 보수적인 공화당으로 표를 몰아주는 결과를 낳았고, 트럼프는 예상을 깨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 이민 문제에 대한 정치적 갈등을 살펴보자. 대체로 보수주의자는 이민을 반대하고 진보주의자는 이민에 우호적이다. 왜 그럴까. 보수 정치인들이 국가로 유입되는 이민자를 개인의 몸에 침투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무의식 속에 이민이 세균이나 질병과 연결되면, 이민에 반대하는 정치적 신념은 질병을 피하려는 진화적 동기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2009년 실시한 독감 바이러스 실험도 이 같은 결과를 뒷받침한다. 저자는 당시 한창 기승을 부리던 독감 백신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면서 피실험자들에게 이민에 대한 태도를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충격적일 만큼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독감의 위협에 관해 들었지만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은 이민에 훨씬 더 부정적이었다. 반면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은 좀 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상해 보이지만 사실 정치적 태도는 진화적 과거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원시적 욕구가 신념의 근간이 되는 셈이다. 다만 우리는 그 신념을 고수하는 이유를 스스로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대중매체를 통한 고정관념과 신념의 문화적 전파력은 더 분명하다. 특히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뉴스마저 문화적 고정관념을 심화시킨다.
1990년대 미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미국 빈민의 29%였다. 따라서 미국에서 빈민으로 사는 사람들의 사진 중 30% 정도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어야 맞다. 그러나 예일대 정치학자인 마틴 길렌스가 1988∼1992년까지 조사한 빈민 관련 뉴스 잡지 기사 182개의 배경 사진에서 62%가 흑인이었다. 실제보다 2배 정도 많은 셈이다. ABC, NBC, CBS 등 3대 TV 방송국의 저녁 뉴스도 비슷했다. 미국의 빈곤에 관한 TV 뉴스 보도에 등장하는 사람의 65%가 흑인이었다. 이처럼 흑인 이미지를 과도하게 쓰는 보도는 시청자들의 빈곤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흑인들이 자신과 그들의 공동체에 갖는 무의식적 신념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무의식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에 침투해 우리의 인생과 세상을 바꾼다. 하지만 우리가 모른다는 이유로 대응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한 틀을 제대로 갖춘다면 우리는 개인적 상처를 치유하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책은 무의식을 파악하고 잘 활용해 더 나은 삶으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무의식에는 인생을 설계하는 힘이 있다. 508쪽, 1만8000원.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