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련된 파격적 무대
단순하면서 현대적 감각 연출
고전 의상 대신 청바지·운동화
- 주요 캐릭터의 변화
여주인공 샤를로트 청순함 벗고
비극적인 선택에 개연성 부여해
- 정통 아리아 하모니
신상근·김동원·김정미·양계화
국내외 맹활약 성악가 총 출연
서울시오페라단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 오페라 ‘베르테르’는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이 지점들은 관객들이 눈여겨봐야 할 관람 포인트이기도 하다.
첫째는, 스타 연출가인 김광보의 파격적이면서도 세련된 무대 구현이다. 현재 서울시극단 단장을 맡고 있는 김광보는 연극과 뮤지컬 쪽에서 기존 작품을 통찰력 있게 재해석하는 연출로 성가를 높여왔다. 단순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선사하는 무대는 그로 하여금 미니멀리즘의 대가라는 이름을 얻게 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오페라에 도전한 그는 역시 특유의 깔끔한 무대를 선보인다. 극의 흐름에 따른 계절의 변화를 다 담아내면서도 결코 요란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오페라에서 볼 수 있는 고전적 의상이 없다. 출연자들은 청바지와 멜빵 바지를 입고, 운동화와 하이힐을 신는다. 이런 시도가 최근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오페라 관객으로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현대 복장은 익숙해지고 결과적으로 줄거리의 무거움을 이완하는 자극으로 작용한다.
두 번째는, 주요 캐릭터의 변형이다. 이번 작품은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베르테르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번민하다가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는 줄거리는 소설과 같지만, 세부 캐릭터는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여주인공 샤를로트. 흔히 알려진 것처럼 청순가련형이 아니라 팜파탈 캐릭터에 가깝다. 베르테르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하며 결국 그를 죽음으로 데려간다.
김광보는 젊은 베르테르가 왜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개연성을 샤를로트 캐릭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로써 고전 작품 속 사랑의 비극이 현대 관객에게도 공감을 준다. 지난 2000년 창작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무대에 올린 바 있는 김광보는 고전 주인공 베르테르를 21세기로 데려오고 싶었다고 했다. 2시간 10분짜리 오페라를 통해 그는 소망을 꽤 이룬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정통 오페라 관객이 기대하는 아리아의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경재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이 예술감독으로 이끈 이번 작품에 피아니스트 정호정 씨가 음악 코치로 참여했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 70명은 양진모의 지휘 아래 웅장하면서도 유려한 선율을 선사하며,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의 노래는 극의 완급을 효과적으로 조절한다.
국내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온 성악가들의 아리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베르테르 역은 신상근과 김동원이, 샤를로트는 김정미, 양계화가 더블 캐스팅으로 연기한다. 샤를로트의 약혼자 알베르는 공병우와 이승왕이, 극의 청량제 역할을 하는 소피 역은 김샤론, 장혜지가 맡았다.
4막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각 막의 끝마다 애끓는 사랑과 번민을 호소하는 아리아로 관객의 가슴을 격동하게 만든다. 특히 3막 마지막에서 베르테르가 샤를로트에게 절절한 사랑을 호소하고 이에 흔들리는 샤를로트가 신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하는 아리아가 엇갈리면서 되레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대목이 압권이다. 프랑스에 유학하고 있는 연출가 김민정 씨가 새로 번역한 대사의 시적 운율도 새겨볼 만하다. 5월 2, 3일 오후 7시 30분, 4일 오후 5시 공연.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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