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 베이징 특파원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기차역 확장 공사로 임시 이전했던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지난 3월 30일 ‘조용히’ 되돌아왔다. 이날 현지 매체 하얼빈일보는 “기념관이 하얼빈 기차역으로 돌아간다. 오늘 개관한다”고 짧게 1단 광고를 냈다. 이 소식을 접한 베이징(北京)의 한국 언론 몇 곳이 현장을 취재해 보도하면서 재개관 소식이 알려졌다. 이처럼 조용히 기념관 재개관이 진행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거 같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지난달 30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2년 만에 하얼빈 역사로 돌아왔지만, 재개관을 알리는 공지나 중국 언론의 보도는 거의 없었다”며 “대일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하는 중국이 일본을 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이 안 의사 순국일인 3월 26일에 맞춰 기념관 재개관을 희망했지만, 중국 측은 더 늦췄다고 전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총괄공사), 주중 일본대사관 공사를 지낸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 씨는 ‘한국인만 모르는 일본과 중국(2016년)’에서 이와는 다른 얼굴의 중국을 다룬 바 있다. 그는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를 세우는 일을 한국이 요청했지만, 중국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돌연 한국이 요청한 그 이상의 제안을 해왔다. 정치적으로 한·중 연대를 부각할 기회가 왔다고 본 것”이라고 밝혔다. 한·중 밀월 관계였던 2013년 당시 중·일 관계는 2012년 일본의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국유화 선언으로 최악이었다. 결국 ‘안중근 의사’가 중국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지렛대’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후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고, 지금도 여파가 있다. 반면, 지난해 10월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시 주석이 아베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방중한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과 마주 앉아 회담을 진행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이는 2017년 5월과 지난해 3월 이해찬 전 총리(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각각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방중해 시 주석을 만났을 때의 자리 배치와 ‘오버랩’되며 주목을 받았다. 시 주석은 당시 회의 탁자 정중앙에 앉고, 한국 특사들은 시 주석의 오른쪽 아랫자리에 앉도록 해 ‘하대 의전’ 논란이 있었다. 최근 중·일 간 밀월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들어낸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강하다.

반대로 한·일 관계는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과 양국 해군 간 갈등이 겹쳐 갈수록 틈이 벌어지고 있다. 한·일 관계가 악화하고 한·중 관계도 획기적 모멘텀을 찾지 못하는 사이 동아시아에서의 중국 위상과 영향력만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동아시아 외교의 주도권을 중국에 내주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동맹국 외교가 필요한 시기다. 새로운 일본 국왕이 즉위하면서 ‘레이와(令和)’ 시대를 열었다. 한·일 갈등을 끝낼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utopian21@
김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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