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21건 중 1건도 규명못해
전체사업장 35% ‘스톱’상태
배터리 생산·전력솔루션 업체
ESS 관련 실적 없고‘역성장’
“KC인증기준 8월까지 마련”
새 제품 제원·자재 준비 등
기준 맞추려면 6개월 소요
원인규명·안전기준 속도내야
“정부 일정대로라면 올해 하반기에 국내 에너지저장장치(ESS)업체들은 다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기업은 물 한 모금이 절박한데 정부는 이제야 우물을 찾고 있는 셈이니 무작정 기다리라는 말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ESS 화재 사태가 터진 지 만 1년이 된 가운데 정부가 알맹이 없는 중간 조사 결과를 내놓자 ESS 업계가 극도로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정부가 화재 원인을 단 한 건도 규명하지 못하면서 기업들은 신규 수주를 전혀 못해 고사 위기에 내몰렸지만 정작 정부가 안일한 대책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2일 관련 업계는 정부가 ESS 화재 원인 발표와 안전기준 강화에 대한 정책 방향성은 제시했지만, 실행 시기는 긴박한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날 화재 조사 결과와 새 안전 기준의 발표 시기를 각각 6월 초, 8월 말이라고 처음으로 밝혔다. 태양광· 풍력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ESS는 지난해 5월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20건(2017년 포함시 21건)이나 발생해 국내 ESS 사업장 1490곳 중 약 35%(522곳)의 가동이 멈춘 상태다.
정부는 지난 1월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꾸린 후 화재 원인 발표 시기를 두 차례나 연기했다가 이날 6월 초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ESS를 설치할 때 필요한 안전 기준 발표도 8월로 늦춰지게 됐다.
정부는 소용량 전력변환장치(PCS)와 휴대용 제품에 장착되는 배터리에만 적용되는 KC 인증을 ESS용으로 확대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8월까지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업체들은 새로 강화된 안전 기준을 근거로 제품 제원과 자재를 다시 준비하고 사업성도 재검토해야 한다. 발주와 수주가 통상 5~6개월이 걸리는 만큼 사실상 신규 수주는 내년 1분기에나 가능하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KC 인증 기준이 8월에 마련될 경우 유관 기관들의 정책 검토 시간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올해 장사는 공을 칠 수밖에 없다”며 “속도감 있게 안전 기준을 마련해 생존 위기에 몰린 ESS 생태계에 호흡기를 달아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업계는 조속히 화재 원인 분석과 안전 기준 마련이란 ‘투 트랙’을 진행해 ESS 생태계가 붕괴하지 않도록 속도감 있는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한 화재 원인 분석과 달리 국내 ESS 안전 기준은 그동안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조치를 그대로 인용해왔다. 그동안의 관행을 고려하면 새로운 안전 기준 발표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는 의견이다. 다중이용시설인 실내는 강화된 안전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사람이 없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실외 ESS는 신규 발주를 해 가동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ESS 업계의 피해는 현재 눈덩이처럼 불어난 실정이다. 삼성SDI, LG화학 등 배터리 업체와 LS산전 등 전력솔루션 업체들은 모두 1분기에 ESS 관련 실적이 전혀 없거나 역성장을 기록했다. 삼성SDI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1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보다 52.2% 감소한 1188억 원을 기록했다. 중대형 전지 사업부문에서 국내 ESS 수요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LG화학은 1분기 전지 사업부문에서 ESS 화재에 따른 일회성 비용 1200억 원이 발생해 적자를 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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