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충무로 서울사무소에서 농구 감독을 거쳐 지난 10년간 기업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충무로 서울사무소에서 농구 감독을 거쳐 지난 10년간 기업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前연세대 감독

실업 농구팀 5년 선수생활뒤
현대건설 통합구매실서 근무
이라크서 노상강도 물리치기도
20여년간 대학·프로팀 지휘봉
통솔력 인정받아 경영자 변신
美서 국내 첫 QSC 받는 기염

감독 뜻대로 경기 안 흘러가듯
주52시간 등 경직된 정책 안돼
정부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회사·노조가 응용력 발휘해야

요즘 건배사로 ‘비행기’ 애용 중
비 : 비전을 갖고
행 : 행동하면
기 : 기적이 일어난다


연세대 농구부의 황금기를 이끈 최희암(64) 전 감독은 현재 고려용접봉(KISWEL)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중구 충무로 고려용접봉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최 부회장은 회사 상징인 ‘코끼리 로고’가 있는 점퍼를 입고 지난달 실적을 보고받고 있었다. 회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지난달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주 52시간 근무’ 여파가 곧바로 매출에 타격을 줬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눈에 보이는 마이너스 지표는 회사를 책임지는 경영자로선 뼈아프다. 최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미소를 잃지 않고 각자 자리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연세대 감독 시절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보단 자신이 맡은 포지션에서 특기를 살리는 ‘적성 농구’를 강조해온 최 부회장이다.

한 시대를 호령한 농구 감독은 단단한 경영자로 변신해 있었다. 기아차, 삼성전자, 현대전자 등 쟁쟁했던 실업팀을 제치고 대학팀 최초로 연세대 농구부를 농구대잔치(1993~1994시즌) 우승으로 이끌었던 이야기보다 회사 경영과 관련한 대화를 나눌 때가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용접봉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는 최하위에 머물던 인천 전자랜드 프로농구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키고 지난 2009년 코트를 떠났다. 전자랜드 감독 시절 알고 지낸 구단주의 친형 홍민철 고려용접봉 회장의 제안으로 기업인으로 변신했고 중국 다롄(大連) 공장장을 거쳐 부회장까지 승진했다. 전자랜드 감독 시절 그를 눈여겨본 홍 회장은 그의 통솔력에 반해 과감하게 중국 법인을 맡겼다. 분야는 다르지만, 최희암이라면 뭔가 해낼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고려용접봉은 연 매출 3000억 원 규모의 회사다. 한국 공장 외에도 중국, 미국, 말레이시아 등지에 공장을 두고 1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최 부회장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를 상대로 영업하고, 공장을 관리하기 위해 주로 경남 창원에 머물고 있다. 부회장 승진 이후에는 대외 활동을 위해 종종 서울을 찾는다. 최 부회장은 인터뷰가 시작되자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주 52시간 근무 정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해 근로자 삶의 질을 올리겠다는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정책 도입 시기와 방법이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주변에 경영하는 분들을 만나면 왜 하필 경제 상황이 안 좋은 이때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수출기업들은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주문 물량을 맞추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거든요. 우리 회사만 해도 계도기간이 끝나고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첫 달인 지난 4월 실적이 전달과 비교해 5~7% 정도 악화했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다행인 게 재고 물량이 있어 버틸 수 있지만, 재고 물량이 다 빠지면 그때는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워집니다. 지금 환율도 우리 편인데 안타까울 뿐이죠.”

현 상태라면 회사 경영 실적을 위해 인력을 줄여 수지를 맞추거나, 인력을 더 뽑아 매출을 늘려야 하는데 양쪽 다 어려운 문제다. 특히 인력을 더 뽑았다가 경기라도 나빠지면 그때는 더 큰 인력 감축이 불가피해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고려용접봉의 경우 직원 80% 정도가 현행 주 52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는 게 최 부회장의 전언이다.

“현장에서는 회사가 있어야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맞추는 게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해 있는 거죠. 일단 이 문제를 풀려면 정부에서 지침만 정해주고 주 52시간 시행 여부는 노사가 합의해 결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과 산업은 자생 능력이 있어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아도 상생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농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독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한다고 해서 경기가 감독 뜻대로 풀리는 게 아닙니다. 상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변수는 있기 마련이고 그때 선수들이 상황에 맞는 응용력을 발휘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산업별 각 분야에 맞게 고용 문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준 다음에는 회사와 노조가 응용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모든 산업을 똑같게 하라는 것은 각 가정에 숟가락 몇 개, 젓가락 몇 개를 두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최 부회장은 1977년 현대전자 농구단에 입단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농구단에서 5년간 선수로 뛰다가 은퇴 후 현대건설 통합구매실에서 근무했다. 1985년 고참 대리가 되자 진급을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중동 근무를 하게 됐다. 근무지는 이라크 바그다드였다. 최 부회장은 당시 돈을 노린 강도들과 마주친 사건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2인조 강도가 퇴근길 내 차 앞에 나타나 한 명은 앞에서 몽둥이로 나를 때리고 한 명은 뒤에서 나를 붙잡고 007가방을 빼앗기 위해 팔을 물었는데, 그때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게 소리를 질렀고, 다행히 사람들이 몰려나와 위기를 모면했죠. 그 가방 안에는 자동차와 팩시밀리 등을 들여올 통관서류와 오늘날로 치면 현금 1000만 원이 있었습니다. 돈은 잃어버리면 그만이지만, 통관서류는 어떻게든 지켜야 했죠. 만약 통관서류를 잃어버린다면 현장 업무에 차질이 불가피했거든요. 그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최희암(왼쪽) 부회장이 직원들로부터 지난 4월 실적을 보고받은 후 경영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는 요즘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악화한 실적으로 고민이 많다고 했다. 곽성호 기자
최희암(왼쪽) 부회장이 직원들로부터 지난 4월 실적을 보고받은 후 경영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는 요즘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악화한 실적으로 고민이 많다고 했다. 곽성호 기자

사회 초년병 때 대기업에서 배운 악바리 정신은 이후 대학 농구부를 최정상으로 이끈 성공 신화의 밑거름이 됐다. 이후 20년 넘게 대학과 프로 농구팀을 이끌면서 익힌 리더십은 오늘날 ‘경영인 최희암’을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 최 부회장은 고려용접봉 입사 초기 다롄에서 겪은 술 문화도 잊지 못했다. 중국 시장 개척을 위해 중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주량 소주 2잔)을 쓰러질 때까지 마시곤 했다. 중국인이 중시하는 관시(關係·인적 관계를 뜻하는 중국말) 때문이었다. 그는 “중국인은 술을 함께 마시면 상대가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못 마시는 술을 바닥에 누울 때까지 마셨다”며 “스포츠는 이번에 지면 다음에 이기면 되지만, 회사는 망하면 끝이기에 중압감은 기업 경영 쪽이 더 세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최 부회장은 다롄 공장장 부임 후 회사 용접재료 판매 실적을 40~50% 늘리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영업총괄 사장이 됐고, 기술력 제고를 통해 국내 최초로 미국 기계학회(ASME)로부터 원자력제조 인증(QSC)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2017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이 무렵 그의 성공 비결이 궁금했다. 최 부회장은 농구팀 운영과 기업 경영 모두 ‘사람’을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농구 감독에게 필요한 능력이 선수 구성 능력과 위기관리 능력 두 가지인데 기업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만 잘 관리해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호황일 때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최 부회장은 31세 때 연세대 농구부 지휘봉을 잡았다. 이때 선수들은 감독을 ‘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훈련 때만큼은 형이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속옷만 입고 얼음물에 들어가게 하는 등의 강도 높은 훈련은 최희암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훈련은 혹독했지만, 이때도 그의 머릿속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최 부회장은 연세대 감독 시절 고교생이던 문경은, 서장훈, 우지원 등 당시 유망주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매일 집에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였다. 키가 2m 넘는 서장훈을 데려올 때는 대학 측에 요청해 재래식 변기를 양식 변기로 바꿨다. 선수 편의를 위한 작은 배려였다.

틀에서 벗어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최희암 리더십 중 하나다. 연세대 감독 시절 그는 공수 전환 때 센터인 서장훈에게 3점 슛을 던지게 해 화제가 됐다. 당시 농구계에서는 센터가 3점 슛을 쏘는 건 불문율을 깨는 변칙 플레이였다. “제가 센터에게 3점 슛을 던지게 하니까 해설진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저를 욕하더라고요. 심지어 골이 들어가도 욕을 했는데, 그때 제가 구사한 플레이가 세계적인 추세였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몰랐던 거죠. 지금도 기억나는 건 라이벌 고려대와의 경기에서 서장훈이 경기 종료 4초를 남기고 3점 슛을 성공시켜 이긴 적이 있었죠. 이런 성공 사례가 쌓이면서 지금은 오히려 센터가 기회가 있을 때 3점 슛을 안 쏘면 욕먹는 시절이 왔죠.”

최 부회장은 농구팀과 기업이 다른 점도 있다고 했다. 농구는 승리와 우승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팀 전체가 뛰지만, 기업에서는 구성원마다 목표가 달라 관리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농구는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하면서 강하게 밀어붙이더라도 구성원들이 이해했지만, 기업에서는 같은 방식이 먹히지 않았다”며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설득하는 데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부분이 매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최근 밀고 있는 건배사가 있다. “요즘 ‘비행기’라는 건배사를 외치고 있습니다. 비:비전을 갖고, 행:행동하면, 기:기적이 일어난다죠. 요즘 같이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비전을 갖고 힘차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꿈을 갖고 움직이다 보면 분명히 좋은 일을 경험하실 겁니다.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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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전북 무주 출생 △서울 휘문고 △연세대 체육교육학 학사 △현대전자 농구단 △연세대 농구부 감독 △울산 모비스 감독 △동국대 농구부 감독 △인천 전자랜드 감독 △고려용접봉 중국 다롄법인 법인장, 국내영업총괄 사장, 대표이사 부회장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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