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추구해 온 독일에서 이 정책의 ‘실패 조짐’이 보인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5년간 원전을 줄이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 1600억 유로(약 209조 원) 넘게 투입했지만, 전력난을 겪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점과 전기료 인상 부담이다. 그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달성하기가 어렵다. 탈원전 정책의 실패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무관하게,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한국 신형경수로 APR1400의 기술 쟁점이 모두 풀려 설계인증 절차를 신속히 행할 것이라고 최근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5월 중 법제화 내용이 미국 연방관보에 30일간 게재되면 7월 최종 법률안이 공표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일본과 프랑스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13년 전 우리 원자력계의 외침은, APR를 우리말로 ‘앞으로’, APR+를 ‘더 앞으로’였다. 그리고 진정 앞만 보고 뛰었다. 행여 중국이 엿보고, 러시아가 베낄까 봐 논문 발표 대신 특허등록에 전념했다. 해외 출장도 자제했다. 국제 협력 역시 조심했다. 심장에 해당하는 냉각 펌프, 안면에 해당하는 대면계통, 두뇌에 해당하는 설계 코드 등 미국이 독점하던 핵심 기술을 하나씩 국산화했다.
당시 뜨거운 감자가 하나 있었다. 원자로 출력이 표준경수로 OPR1000의 300만㎾에서 신형 경수로 APR1400의 400만㎾로 올라가자 만에 하나 핵연료가 녹아내리는(melt down) 사고가 났을 때도 원자로가 뚫리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이었지만, 국내 기술진은 그때부터 ‘그래도 일어난다면’에 고심하고 있었다.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에 혼쭐난 미국은 당시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신형로의 출력을 300만㎾로 제한하고, 운전원이 없거나 발전기가 끊기더라도 사고 때 뜨거워진 원자로에 냉각수가 저절로 흘러 들어가도록 옥탑에 수조를 만들어 두는 피동식 안전계통을 도입했다. 문제는, 운전 시 오작동으로 냉각수가 흘러내리거나 지진이 일어났을 때 수조가 무너져 내리면 정작 필요한 냉각수를 몽땅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었다.
반면,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주눅 든 유럽은 프랑스-독일이 합작한 신형로의 열출력을 500만㎾ 올리되, 일단 핵연료가 녹아내리면 아예 원자로가 뚫릴 각오를 하고 콘크리트 바닥에 모아 식히겠다는 포집기라는 걸 갖다 붙였다. 섭씨 3000도에 100t이 넘는 용융물이 흘러나와 쌓였는데 거기에 물을 뿌리는 건 장작더미에 기름을 붓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유럽의 기술은 거기까지였다.
미국과 유럽을 바라보던 한국은 동양식 중용을 따랐다. 출력은 미국과 유럽의 중간으로 가되 핵연료가 녹을 듯싶으면 원자로 안팎을 동시에 식혀 절대로 원자로에 구멍 날 일이 없게 만든 것이다.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의 교훈을 살려 최고의 안전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름하여 ‘용융물 원자로 내 보존’ 즉, 최악의 사고라도 원자로 안에서 종결하는 것이었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우리의 원전 기술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한국이 머뭇거리는 사이 중국과 러시아가 국제 무대를 누비기 시작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우리의 원전 기술을 사장(死藏)시키지 않고 경제를 살리려면 탈원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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