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정부가 지정한 ‘연극의 해’이다. 지난달 취임한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연극인들을 만나 침체한 연극을 부흥하기 위해 내년을 연극의 해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문체부는 내년 국립극단 창단 70주년을 맞아 연극 행사와 이벤트를 집중 마련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려하다 이날 연극의 해를 공식화했다. 이미 한국연극협회를 중심으로 사업계획에 대한 기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체부는 연극의 해 사업을 통해 열악한 한국 연극을 부흥하고 대학로를 국내에 관광객들이 찾는 공연 관광의 명소로 만들 계획이다.
연극의 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0년 당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매년 특정 장르를 지정해 집중 지원하겠다며 마련한 ‘예술의 해’ 사업 첫 번째가 1991년 ‘연극·영화의 해’였다. 이어 춤의 해, 책의 해, 국악의 해, 미술의 해, 문학의 해가 시행됐다. 당시 정부는 연극과 영화가 국민 생활과 직결되고 문화예술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데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에서 소외됐다며 획기적인 발전의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해 ‘연극·영화의 해’를 정했다. 이로부터 29년 만에 연극의 해가 단독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연극이 위기라는 뜻이다. 실제로 연극은 시대 변화 속에 제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18년 문화 향수 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문화예술행사를 한 번 이상 관람한 국민 비율은 81.5%로 처음으로 80%를 넘었지만, 연극관람률은 14.4%에 그쳤다. 영화는 75.8%, 대중음악은 21.1%, 전시는 15.3%였다.
문제는 거의 30년 만에 부활하는 연극의 해가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이다. 시작하기도 전에 찬물을 붓겠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만큼 낡은 포맷으로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다. 분야는 다르지만, 지난해 ‘책의 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는 갈수록 독서 인구가 떨어지는 가운데 문체부가 25년 만에 지정한 책의 해였다. 문체부는 예산 20억 원을 투입해 다양한 사업을 벌였지만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흥미롭고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선보였고 가능성 있는 프로그램은 ‘책의 해’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결과를 거뒀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독자를 한 명이라도 늘릴 수 있다면 그 어떤 이벤트라도 만들어 힘을 보태야 한다. 하지만 온갖 행사와 볼거리, 페스티벌이 넘쳐나는 요즘, ‘예술의 해’ 지정 같은 해묵은 아이디어는 또 하나의 이벤트를 더하는 일일 수도 있다. 동어반복이 아닌 새로운 비전의 문화 정책이 아쉽다.
최근 소설가 한강이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2014년 시작된 ‘미래 도서관’은 매년 작가 한 명에게 미공개 원고를 받아 노르웨이 오슬로 공공도서관에 봉인한 뒤 100년 후에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공공예술프로젝트이다. 100년 후 인쇄될 책의 종이는 오슬로 외곽 노르드마르카 숲에 심은 1000그루 나무로 만든다. 100년 후 독자를 향한 목소리, 나는 사라져도 계속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이다. 우리 문화정책도 새로운 메시지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연극의 해가 예상 가능한 행사의 나열이 아니길 바란다.
c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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