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거장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예리한 시각으로 사람들의 속마음을 꿰뚫으며 섬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에서 내리막길에 들어선 여배우의 삶과 예술에 대한 욕망을 담담하게 펼치며 공감을 전한 그는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퍼스널 쇼퍼’(2017)에서는 쌍둥이 오빠의 죽음 이후 혼란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영매의 복잡한 내면을 독특한 시각으로 보여줬다. 이번에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관계에 집중했다. 16일 개봉하는 ‘논-픽션’(사진)은 e북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놓인 출판계를 조명하며 여러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관객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성공한 출판사 편집장 알랭(기욤 카네)은 고민이 많다. 출판사 운영을 위해 e북의 득세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여전히 종이책에 대한 애정이 깊다. 또 친구인 작가 레오나르(빈센트 매케인)가 직접 경험한 연애사를 쓴 소설을 더 이상 출간하고 싶지 않다. 레오나르는 알랭의 아내인 배우 셀레나(질리에트 비노슈)와 불륜 관계이며 알랭도 새로 고용한 디지털 마케터 로르(크리스타 테렛)와 깊은 사이로 발전한다. 또 국회의원 보좌관인 레오나르의 아내 발레리(노라 함자위)는 남편의 불륜을 눈치채지만 눈감아준다.

등장인물들이 출판업계의 현실부터 사람들이 요즘 어떤 글을 어떤 방식으로 읽는지, 유럽연합(EU)의 정책이 어떤지 등, 소설가가 작품 속에 자신의 경험을 녹여 넣는 것이 옳은 일인지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반복해 이어진다. 각자의 주장을 펴면서도 상대의 이야기도 들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불륜 커플들이 서로를 만나는 이유를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모습도 보여준다.

특별한 사건을 강렬하게 펼치지는 않으면서 러닝타임 내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아사야스 감독은 그동안 내놓은 작품과는 달리 이 영화를 가벼운 톤으로 그리며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에 대해 “이 영화 초고를 작업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코미디를 쓰고 있었다”며 “어떤 의견과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진지함도 필요하지만 유머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디지털화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세계와 우리의 소통 방식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15세 이상 관람가.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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