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이지 않고 삭혀낸 ‘안동식혜’는 새콤하고 매콤한 맛이 돋보인다. 보통 ‘식혜’라고 하는 쌀 음료는 안동에서 ‘감주’라고 부른다.  아래는 칠계재 장독대.  안동관광두레 제공
끓이지 않고 삭혀낸 ‘안동식혜’는 새콤하고 매콤한 맛이 돋보인다. 보통 ‘식혜’라고 하는 쌀 음료는 안동에서 ‘감주’라고 부른다. 아래는 칠계재 장독대. 안동관광두레 제공

안동 다섯 고택의 내림음식 - (1) 칠계재

지역색 가득 ‘안동 식혜’
끓이지 않고 삭혀낸 전통음료
새콤함 속 고춧가루의 매운맛
한쪽눈 찡긋 감길 정도로 상쾌

땀이 깃든 ‘제철 재료’
텃밭채소·갓낳은 달걀 등 사용
배 깍두기·복분자 연근조림 등
군침도는 진수성찬에 입벌어져

인생 담긴 ‘엄마 밥상’
200년넘은 한옥서 50년째 거주
당뇨 앓던 시모 위한 식단 적용
시부모 봉양하며 조리법도 발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유교의 고장, 가장 많은 종가가 있는 경북 안동시. 10여 년 전 ‘종가포럼’을 통해 처음 안동을 방문했다. 행사 중 최고의 관심사는 뷔페식 점심 식사.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종가 며느리들이 집안의 내림 음식을 손수 준비해와 나누고, 즐긴다고 하니 나도, 동행한 지인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만의 관심이 아니었던 듯 많은 참가자가 줄을 서서 먹는 통에 아쉽게도 궁금했던 많은 음식은 금방 동나고 말았다. 얼마 전 안동 다섯 고택의 안주인들이 뜻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주인들은 오래전부터 ‘고택’을 활용해 일반인들에게 숙박을 제공해왔고, 안동관광두레를 통해 숙박과 결합한 아침 식사 외에도 각 집안의 다양한 내림 음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상품으로 개발했다. 안동은 면적이 넓은 도시라 여행 동선을 잘 짜야 한다. 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서쪽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가장 가까운 칠계재 고택으로 향했다.

안동 고택 칠계재의 아침상. 안동관광두레 제공
안동 고택 칠계재의 아침상. 안동관광두레 제공

칠계재는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에 위치한 안동 장씨의 후손이 사는 고택이다. 이 집은 호가 칠계재인 장세규 씨가 건립했다. 칠계재 대문으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텃밭과 장독대 그리고 닭장에 있는 닭들이 시골에 온 것을 실감 나게 했다. 대문으로 들어서니 아담한 중정과 안채가 눈에 들어왔다. 대청마루에 오르니 한자가 쓰인 액자를 비롯해 오래된 벽시계, 재봉틀 등 고택이 흘러온 세월을 증거하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칠계재 안주인 류춘영 씨를 만나 그가 정성스레 준비한 다과를 접했다. 끓이지 않고 삭혀낸 ‘안동식혜’다. 밥알이 동동 뜨면 새콤하면서 고운 고춧가루의 매콤함이 올라온다. 눈물이 나도록 신 음식을 좋아하는 나도 한 입 넣으니 한쪽 눈이 감길 정도로 상쾌함이 돋보였다. 국물이 맑고 깨끗하다. 우리가 보통 ‘식혜’라고 하는 쌀 음료는 안동에서 ‘감주’라고 부른다.

“칠계재를 지으신 분은 7대조 할아버지입니다.” 칠계재 안주인의 집안 소개가 시작됐다. 집 중앙 벽에 칼 한 자루가 보기 좋게 장식돼 있다. 혹시 칠계재 할아버지 것이냐고 물으니 웃으며 아니라고 한다. “칠계재 할아버지 칼은 국학진흥원에 보관돼 있고 저 칼은 해병대를 나온 제 아들 것입니다.” 집 내부 곳곳에 오래된 것들이 눈에 보였다. 그중 재봉틀에 호기심이 생겼다. “4대째 내려오는 것이지요. 굴러가긴 하지만 쓰려면 고쳐야 해요.”

건립자의 호인 칠계재는 이 집의 가훈이 됐다. 경계하고 지켜야 할 7가지 덕목이다. 제사를 정성으로 모실 것, 친척 간에 화목할 것, 손님을 즐겁게 맞이할 것, 교육과 학문에 힘쓸 것, 농사를 소중하게 여길 것, 조세를 철저하게 바칠 것, 불우이웃을 적극 도울 것 등 내용이 인상적이다.

칠계재 장독대.  안동관광두레 제공
칠계재 장독대. 안동관광두레 제공

류 씨를 안주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곳이 종갓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택의 며느리는 종부라고 부른다. 안주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류 씨의 고향은 안동 임동리다. 그는 결혼 후 이 집으로 이사 왔다. 6·25전쟁 이후 비어 있던 집에서 1971년부터 50여 년 동안 살고 있다. “이미 200년이 넘은 한옥이었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 늘 이 집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 복을 얻은 걸까. “이사 와서 결혼 7년 만에 손자를 안겨드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 딸만 셋을 둔 나로서는 어머니께 죄스러운 마음이 있어 항상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안동에서는 꽤 유명한 류씨 가문에서 시집온 안주인은 명문가의 큰며느리로 오랫동안 아들을 낳지 못하자 스트레스가 컸었다고 한다. “대규모 집수리를 했어요. 비도 새서 살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시내에 집 한 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투자했지만 티도 안 났다. 이후 수리한 것이 문제가 돼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하고 고택으로만 지정됐다. “하지만 막내를 낳았으니 후회는 없어요.” 모든 마음의 응어리는 칠계재로 이사 온 후 치유됐다.

안주인이 만들어내는 음식도 궁금했다. “시어머니께서는 60대부터 당뇨를 앓으셨어요. 시어머니 음식을 오랫동안 준비하다 보니 반 의사가 다 됐지요.” 현재 칠계재에서 구현하고 있는 모든 조리법은 당뇨식이 많이 적용됐다고 한다. “시집와서 지금까지 시부모님 봉양하며 계속 발전돼 왔지요. 식사 챙겨드리고 약 잡숫게 하고 운동시켜 드리고. 그러느라 아이들 중요한 날에 함께하지 못했던 적이 많았어요.” 안주인은 시어머님께서 장수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이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주변에 나물들이 많이 납니다. 또 텃밭에서 난 채소와 닭이 낳은 달걀로 음식을 만들어요. 거기에 생선 한 가지와 마른반찬 한 가지를 더하지요.” 이러다 보니 끼니마다 열두 가지 이상 찬을 준비한다. 메뉴는 각 계절에 채집되는 나물과 채소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지만 자주 상에 오르는 음식은 곤드레밥, 근대 된장국, 배 깍두기, 북어 보푸라기, 복분자즙에 조려낸 연근, 마전, 쇠고기 너비아니, 잡채, 고추장 더덕구이, 흰살 생선구이, 두부 조림, 무말랭이 장아찌다. “우리 집에 오신 손님들이 드실 수 있는 음식입니다.”

정성껏 차려낸 상을 보면 아침 안 먹겠다 하던 손님들도 한두 입 먹어보고는 밥을 더 달라고 해 잔뜩 먹는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아침상이 궁금해져 일찍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고대하던 아침상을 받았다. 우와∼ 상이 갖가지 나물과 찬으로 가득했다. 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이 나왔고, 다양한 제철 나물과 채소, 버섯 잡채, 생선튀김 등이 식욕을 자극했다. 아침부터 진수성찬을 받은 기쁨을 표현하니 “우리 집에 오신 분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라고 하시며 “한 개 한 개 놓다 보니 열 가지가 넘었다”고 말한다. 특히 복분자 연근 조림은 음식 설명을 들을 때부터 맛이 궁금했는데 역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강태안 미식여행가
칠계재 안주인의 음식 솜씨는 안동 지역에서 꽤 유명하다. 조선왕조 수라간의 마지막 상궁에게 직접 ‘폐백 음식’과 궁중다과를 배웠고, 그가 만든 집안의 내림 음식 육포는 사 먹는 육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차원 높은 맛이라고 평가받는다. 기름기 없는 최고 등급 쇠고기 홍두깨살과 간장양념을 이용해 만든다. 나중에 알게 된 소식이지만, 14일 영국 앤드루 왕자의 안동 ‘퀸스 로드’ 방문을 기념해 안동시에서 마련한 오찬과 다과상에 칠계재 안주인이 시루떡, 경단, 꽃떡 등 떡 분야를 직접 준비했다고 하니 그의 음식 솜씨와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요즘 몸에 통증이 많아져 식욕을 잃으셨던 어머니께서 밥 한 공기를 싹 비우셨다. 우리와 함께 아침상을 받은 투숙객들도 이 집 음식에 감동한 듯 보였다. 없어진 식욕도 돋게 할 반전의 아침상을 대하니 남아 있는 안동 여정에 힘을 얻는 것 같았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다양한 내림 음식에 노력이라는 세월의 깊이가 더해지면서 오늘날 칠계재의 음식이 완성됐음을 느낀다. 시어머니를 위해 밥상을 준비하는 며느리의 마음과 정성, 바로 ‘효심’이 담긴 음식이다. 이 집에 가면 계절 재료로 다양하게 준비된 안주인의 아침상을 꼭 받아 보자. 여느 저녁상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아침 식사 후 고택 주변을 산책했다. 어제 이곳에 들어올 때 느낀 정감과 신선한 아침 공기가 합해지니 더욱 상쾌했다. 사랑채가 마당 출입구 방향으로 나 있어 툇마루를 통해 동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택 뒤에 난 길로 산책하니 더 멋진 동네 전망을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함께 오르지 못한 어머니께는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 드렸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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