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가인 ‘무명배우’
분위기 띄우려니 트로트가 빠질 수 없다. ‘옛날의 나를 말한다면/ 나도 한때는 잘나갔다/ 그게 너였다/ 아니 그게 나였다/ 한때의 나를 장담마라/ 가진 것 없어도/ 시시한 건 죽기보다 싫었다’(전승희 ‘한방의 부르스’ 중). 노래방에서도, 사은회에서도 질문은 가려서 하는 게 안전하다. 오랜만에 마주한 제자에게 “요즘 어디 다니느냐”고 대뜸 묻는다면 다음번 스승의 날을 기약할 수 없다. 한때 잘나가던 스타를 우연히 만나서 “요즘은 어디에 나와”라고 묻는 거랑 비슷하다. 굳이 센스 부재를 공인받을 필요까지 있나. 시시한 배우는 있어도 시시한 배역은 없다는 건 시상식에서 주고받는 덕담일 뿐이다.
음악동네엔 물에 관한 비유가 많다.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한대수 ‘물 좀 주소’ 중). 이 젊은이는 무엇에 목말랐을까. 숨죽이고 들어보면 노래에 곧바로 답이 나온다. ‘물은 사랑이요’, 그렇다.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 물이 오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물을 먹기 시작하고 사랑도 차츰 물 건너간다. 그리고 서서히 잊혀간다. 체육동네인들 다르랴. 물 만난 선수는 사랑을 한몸에 받지만 물 흐리는 선수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물 좋은 데만 찾아다니다가 결국은 입장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고맙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게 물이다. 때로는 생명수였다가 어느 땐 폭포수였다가 마침내 홍수로 변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건네는 물도 있지만 마음이 우려낸 물도 있다. ‘눈물로 쓴 편지는 읽을 수가 없어요/ 눈물은 보이지 않으니까요’(김세화 ‘눈물로 쓴 편지’ 중). 그 편지를 버릴 수 없는 까닭도 노래에 담겨 있다. ‘눈물은 내 마음 같으니까요’. 부치지 못한 편지가 세상에 얼마나 많겠는가. 하루아침에 떴다지만 말이 하루아침이지 어제의 무명이 자고 일어나 바로 유명해지는 일은 없다. ‘그 누가 그 이름을 무명초라 했나요/ (중략) 지는 꽃도 한 떨기 꽃이기에/ 웃으며 너는 가느냐’(김지애 ‘무명초’ 중). 산자락엔 유명초도 있고 무명초도 있다.
사실 무명가수란 되는 일이 없는 가수지, 하는 일이 없는 가수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뛴다. ‘뛰고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송대관 ‘해 뜰 날’ 중)에 구름은 쉽게 걷히지 않는다.
‘아름다웠던 추억/ 기억 모두 다 영원히/ 한 방울 또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리죠’(송가인 ‘무명배우’ 중). 올봄엔 기뻐서 흘린 눈물이 홍수였지만 ‘노래해서 한 달 공과금 낼 돈이라도 벌면 행복하겠다’ 싶었던 게 엊그제다. ‘5월 말 계약만기인데 집주인이 천천히 나가도 된다’고 했단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은 산에서도 싸우고 물에서도 싸운다는 뜻이지 결코 산과 싸우고 물과 싸운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은 그래서 스승과 같다. 스승의 날엔 자연에도 감사를 표하는 게 당연하다.
산전수전 다 치르고 이제는 무대가 산이 되고 바다가 된 가수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교훈이 있다.
‘노을이 진다고 슬퍼 마시게/ 그래야 또 다른 내일이 온다네/ 자네는 아는가/ 진정 아는가/ 팔자는 뒤집어도 팔자인 것을’(나훈아 ‘자네’ 중). 최고, 최상을 꿈꾸는가. 자리는 위험하고 순간은 위태로우니 최고의 1인보다는 최후의 1인이 돼라.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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