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찰총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청와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법안들에 대해 ‘반민주적’이며 ‘기본권 보호 소홀’ 등 근원적 이유까지 제시하며 반대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이례적이다. 더욱이 문무일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로서, 임기 만료를 2개월 남짓 앞두고 있다. 관련 법 개정까지는 까마득하기 때문에 후임 총장에게 떠넘기고 본인은 편하게 물러나면 그만인데도 그렇게 한 것은 상황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문 총장은 16일 기자회견문에서 “국회에서 신속처리법안(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들이 형사사법체계의 민주적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기본권 보호에 빈틈이 생길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점을 호소드린다”고 했다. 문 총장은 지난 1일 해외순방 중 패스트트랙 강행에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는 입장문을 공개한 바 있고, 이에 대해 청와대와 법무부 등이 보완 입장을 밝혔지만 그것으로는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보고 이날 기자회견을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문 총장 스스로 “지금의 논의에 검찰이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했다”는 자책(自責)대로 과거는 물론 지금도 검찰 행태에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권력의 충견’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 형사사법체계 자체를 왜곡시킬 법안들을 강행해선 안 된다는 점에서 문 총장의 지적은 대부분 타당하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강화하고, 기소독점주의 등 무소불위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별도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필요하지 않으며, 검·경 수사권 조정도 종합적이고 정교한 검토를 거쳐 신중히 추진돼야 한다.

이런 문 총장의 문제 제기가 아니더라도 패스트트랙 3개 안건은 사실상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고 있다. 의석수로 제3당인 바른미래당의 새 원내대표로 15일 선출된 오신환 의원은 일성으로 더불어민주당 공수처법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제4당인 민주평화당의 유성엽 새 원내대표는 ‘의석수 300석 고정’ 선거법은 부결시키겠다며 의원 증원을 공식화했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도 동조했다. 지난달 29∼30일 심야에 민주당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을 끌어들여 강행 상정한 선거제도·공수처·수사권 관련 법안이 ‘패스트트랙 4당’ 내부로부터 부정되고, 4당의 정치 연대도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국 혼란만 부추긴 패스트트랙을 철회한 뒤 정국 정상화를 도모하는 것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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