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마약 양성화’ 새 실험

양귀비 가격하락에 농가 생활고
살인 제의, 조직원 변신 가능성

마약범죄 사망자 20만명 추정
군·경찰 지원자 수는 줄어들어
도시 한복판에 조직원 모집공고

마약류 시장 활성案 신중 검토
일각선 실제 효과 낼지 의문도


마약에 지배당해온 멕시코 정권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초유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마약 카르텔을 때려잡는 전쟁을 포기하는 대신 빈농 중심의 마약 재배농가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통해 마약 유통을 뿌리 뽑겠다는 전략적 대전환이 새 실험의 핵심이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애칭 ‘암로’) 멕시코 대통령이 집권한 뒤 채택했다. 암로 대통령은 5월 초 마약 재배농가에 대한 지원책의 방향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집권한 암로 대통령은 올해 초 전임 정권이 12년 이상 진행해온 마약과의 전쟁 종결을 선언했고, 구체적인 방향 전환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셈이다. 마약 카르텔 박멸을 목표로 한 전쟁이 희생자만 양산한 채 실질적인 조직 근절에 실패했다는 판단에 따른 방향 전환이다. 암로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 대신 선택한 마약 농가 빈민구제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암로 대통령은 중장기적으로 마약 제조에 쓰이는 농가의 아편(양귀비)·코카나무의 작물 변경이나 보다 근본적으로 직종 변경을 추진한다는 구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분간 빈민 농가의 재배작물을 정부가 사들인 뒤 폐기하는 식으로 양성화하는 정책을 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약 근절보다 가난 해소가 우선=지난 1일 암로 대통령은 게레로주 아편 재배농가에 재정 지원 필요성을 주장하며 입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암로 대통령은 특히 “이번 정책이 사치와 범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심각한 생계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라며 국민의 이해를 당부했다. 암로 대통령이 이 같은 정책을 펴게 된 배경에는 마약과의 전쟁 후 멕시코 농가의 상당수가 극빈층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아편 재배지역인 게레로주의 아카테펙시의 경우 전체 인구의 97%가 빈곤층이고, 69%는 극빈층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 평균 빈곤층 44%와 극빈층 8%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 지역 주민들은 마약조직의 강요로 오랜 기간 다른 농작물 재배를 금지당한 채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재배해 왔다. 특히 최근 세계적인 마약 트렌드가 아편을 정제하는 헤로인에서 펜타닐로 바뀌면서 아편 수요가 급감해 게레로 지역의 아편 시세는 ㎏당 1300달러에서 200달러까지 급락했다. 이전에도 마약조직으로부터 받는 돈이 적었지만, 마약 가격 하락은 재배농가의 생계를 더 어렵게 했다. 멕시코 당국은 이들에게 재정 지원을 하면서 대체 현금 작물을 도입하거나, 이게 불가능할 경우 북부 지역으로 이주해 탄광업 종사자 등으로의 ‘전직’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게레로의 한 아편 재배자는 “한때 재배된 아편을 수매하던 마약조직들이 가격이 하락하면서 더 이상 농가에 돈을 지원하지 않아 재배한 아편을 몽땅 태우는 집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재정 지원이 없을 경우 이들은 단순한 재배자가 아니라 총을 든 ‘조직원’들로 변신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멕시코 정부의 판단이다. 실제로 한 아편 농민은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살인 교육이나 조직 내 다른 업무를 맡아보라는 제의를 조직으로부터 받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최대 20만 명 사망, 강경 정책 실패=마약과의 전쟁을 치르며 사망자가 너무 많이 나오고, 오히려 마약 카르텔은 더 강해진 상황도 멕시코 정부가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다. 치안 관련 시민단체인 ‘멕시코의 정의’(Justice in Mexico)에 따르면, 마약조직 간 범죄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지난 2007년부터 2018년까지 공식 집계만 12만 명을 넘는다. 여기에 수천 명 단위의 군인·경찰 사망자, 마약조직 간의 전쟁에 휘말린 민간인 등을 포함하면 실제 사망자는 20만 명을 크게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시날로아 조직의 수장인 ‘엘 차포’ 호아킨 구스만이 검거되고 올해 초 또 다른 시날로아 조직의 수장 다마소 로페스가 검거됐지만 마약범죄 사망자 수는 줄지 않고 있다. 마약 자체로 인한 피해보다 인명 피해가 더 크다는 점이 최대 고민이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2만2500명의 공식 사망자가 발표돼 2007년 집계 이래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경찰 지원자 수는 줄어들고 도시 한복판에 마약조직원 모집 공고가 버젓이 붙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멕시코는 지난 2월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받던 지원금도 거부했다. 미국식 정책에 발맞춰 진행하던 마약조직과의 전쟁에 변화를 주겠다는 의미다. 암로 대통령은 ‘마약 합법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경작 지원도 있겠지만 국가적으로 마약류 시장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검토할 것”이라며 향후 마약을 합법화할 의지도 있음을 내비쳤다. 이는 지난해 대선 기간 내내 그가 주장했던 공약이기도 하다.

◇집권 후 사망자 수 증가, 실제 효과 의문도=일각에선 이 같은 암로 대통령의 방식이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올해 1~3월 마약범죄로 인한 사망자는 849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했다. 특히 최근 과나후아토 지역에서 할리스코 뉴 제너레이션과 산타로사 데 리마 두 조직 간의 전쟁으로 947명이 사망했다. 실제 마약전쟁이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암로 대통령의 비판세력은 “아직은 충분한 (군·경찰) 지원자들이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정책은 오히려 무정부 상태와 무장 마약조직들의 세력을 더욱 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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