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유럽은 중세에서 근대로 가는 과도기였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대한 무역독점권을 두고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전반기에 인류 최초의 거품 현상으로 불리는 튤립파동으로 네덜란드가 몸살을 앓았다면 후반기는 잉글랜드가 네덜란드로부터 전해진 주네브르(Genievre)라는 술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독한 술이 싸게 생산되며 하층민에게 대량 소비됐고 이로 인한 알코올의존증이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네덜란드에서는 주로 예네버르(Jenever)로 불렸지만 이 술은 잉글랜드로 자리를 옮기며 주네브르나 제네버(Genever)로 불리다가 진(Gin)으로 불리며 사랑을 받게 된다.

진이 잉글랜드를 장악하기 이전에 잉글랜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던 술은 럼이었다. 콜럼버스를 통해 서인도제도를 점령한 이후 아이티를 비롯한 카리브해의 여러 섬을 지배하던 잉글랜드는 여기에서 나오는 값싼 당밀을 이용해 럼을 만들었는데 카리브해의 지배권을 프랑스에 내주면서 더 이상 럼을 생산하지 못했다. 이러한 때를 맞춰 대체재로 등장한 것이 진이었다. 보리맥아와 옥수수, 호밀을 발효해 술을 만든 뒤에 증류하는 것까지는 위스키와 비슷한데 증류된 술을 오크통에 넣지 않고 노간주나무 열매를 넣어 약성을 침출한 뒤 이를 다시 증류하는 것이 달랐다. 여기에 사용되는 노간주 열매(Juniper Berry)는 두송실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뇨작용에 도움을 주는 약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진을 만든 사람은 네덜란드의 의사이자 과학자인 프란시스쿠스 실비우스(Franciscus de le Boe Sylvius)로 알려져 있다. 물론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대항해 시대로 접어들었던 당시 상황에 맞게 네덜란드 선원들이 항해나 식민지에서 활동 중에 물 대신 마시기도 하고 아플 때를 대비해 약으로 사용하려고 대량으로 보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 만든 것에 대해서는 다른 주장들이 있는데, 1614년에 태어난 그보다 먼저인 1606년에 이미 이 술에 세금을 부과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과 1623년에 공연됐던 ‘밀라노 공작(The Duke of Milan)’이라는 연극에 나오는 대사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 외에도 1495년에 쓰인 요리서대로 만든 진이 재현되고 있는 점 등을 봤을 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실비우스가 위장·신장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할 때 노간주 열매에서 기름을 추출하거나 과실을 이용해 약을 만들었다는 것과 좀 더 다양한 사용법을 위해 연구하고 기여한 바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1601년 식량이 부족해진 벨기에는 술의 증류를 금지한다. 이 때문에 벨기에 남부에 있던 증류 관련 종사자들이 네덜란드와 프랑스, 신성로마제국을 비롯한 주변국으로 옮겨 갔고 여러 국가에서 증류가 보편화됐다. 네덜란드에 이러한 환경은 증류 기술자들의 증가와 경험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증류기술의 발달은 실비우스의 연구가 더해져 네덜란드에서 진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동인도회사 선원들은 매일 150㎖의 진을 배급받았는데 물 대신 마시기도 했지만 물물교환 수단으로도 사용되며 화폐의 역할을 했다.

이러한 진의 발전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증류기가 전쟁물자로 쓰이면서 잠시 주춤하지만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요즘은 보드카처럼 칵테일을 만들 때 많이 쓰이며 바텐더들의 주요 무기로 애용되고 있다.

술칼럼니스트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