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큰 가마솥의 미역국이 맛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딱 한 스푼만 맛보면 안다. 여론조사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 5000만 명의 마음도 대략 1000명 정도만 체크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미역국을 맛볼 스푼에 소금이 묻어 있다든지, 설탕이 묻어 있으면 어떻게 될까? 소금 묻은 스푼으로 맛본 사람은 짜다고, 설탕 묻은 스푼으로 맛본 사람은 달다고 답하게 된다. 같은 이치로 여론조사도 조사 업체의 의도에 따라 엉뚱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그런데도 여론조사는 오늘날 사회과학 연구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제한된 시간과 예산으로 얻으려는 결과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론조사는 정치 현안은 물론, 기업의 마케팅 조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활용된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양날의 칼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조사 업체의 농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의도를 가지고 장난을 치면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 예를 들어 ‘시간이 나면 책을 읽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TV를 시청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보자. 이 질문에서 ‘그냥’이라는 말은 TV 시청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응답자는 TV를 보겠다고 답하길 꺼리게 되고, 당연히 책을 읽겠다는 응답이 많이 나오게 된다. 이런 질문도 꼼수다. ‘대통령 기자회견을 어디서 들었습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신문보다는 TV, 라디오를 선택하게 된다. ‘들었느냐’는 말에 무의식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여론조사엔 이처럼 함정이 숨어 있다.

하지만 첨단 통계 기법의 발달로 여론조사는 과거 불가능했던 일들을 가능한 일로 바꾸고 있다. 예를 들어 ‘마음을 읽는 것’ ‘시를 번역하는 것’ ‘과거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 ‘문을 동시에 열고 닫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저명 통계학자인 필립 J 데이비스와 데이비드 파크의 주장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들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능해진 것도 있다. 문을 동시에 열고 닫는 일이 가능해졌다. 리볼빙 도어, 즉 회전문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패러디한 ‘회전문 인사’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마음을 읽는 것도 가능해졌다. 여론조사가 인간의 내면을 숫자로 파악해 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 속내를 읽어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조사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서베이를 통해 유력 대선 후보를 정하거나 대통령 당선자를 예측하는 것, 상품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것’ 등 마음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갤럽의 1987년 노태우 대통령 당선 예측조사가 보여주듯 등 선거 관련 조사의 경우 100%에 가깝게 정확하다.

물론 여론조사가 우리 생활의 모든 부문에 어울리는 건 아니다. 예술 작품을 평가하거나, 친구를 사귀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정교한 통계 방법론을 이용한 여론조사는 빅데이터 시대와 맞물리면서 더욱 각광 받고 있다.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사의 공정성이다.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정치 관련 여론조사가 그 사례다. 핵심 질문들이 응답자들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상당 부분 조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여론조사는 열린 사회의 가장 큰 적(敵)이다. 여론조사가 존재하지 않는 곳은 자유민주주의가 죽은 곳이다. “여론조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알파요 오메가다.” 갤럽의 창시자 조지 갤럽이 말했다. 그러나 작금 문제가 되고 있는 얼치기 조사 업체엔 이 말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비열한 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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