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1000회

1999년에 파일럿 프로그램 ‘토요일 밤의 열기’로 시작된 KBS ‘개그콘서트’가 1000회를 맞이했다. 과거엔 스튜디오 콩트가 코미디의 주류였는데 ‘개그콘서트’가 대학로 공연무대와도 같은 공개 코미디를 선보이자 사람들은 그 생생함에 충격받았다. 열풍으로 이어졌고 그 후 ‘개그콘서트’는 스타의 산실로 예능계 인재들을 배출하면서 한국 최고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군림했다.

2003년 1월 26일 ‘봉숭아학당’ 코너에서 자체 최고 분당 시청률인 49.8%가 찍혔고, 2011년 12월 25일에 27.9%로 자체 최고 프로그램 시청률을 기록했다. 다른 방송사들도 모두 공개 코미디로 전환해 ‘개그콘서트’형식이 곧 한국 코미디의 형식이 됐다.

이렇게 우리 방송사에 남을 정도로 인기를 누린 ‘개그콘서트’가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 시청률이 5∼7% 수준으로 떨어졌고, 화제성도 거의 사라졌다. 과거엔 ‘개그콘서트’ 관련 논란이 주기적으로 터졌었는데 최근엔 논란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 무관심의 대상으로 밀려난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타난 변화다. 관찰 예능, 리얼 예능이 초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개그콘서트’가 직격탄을 맞았다. 리얼 예능은 미리 짜지 않은 날것의 상황에서 그때그때의 자연스러운 반응과 웃음을 전한다. 리얼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출연자의 진정성이다. 인위적으로 연기하는 것이 아닌 그 자신 본연의 모습일 때 시청자가 반응한다.

반면에 ‘개그콘서트’의 콩트는 철저히 사전에 기획된 것이다. 출연자들이 몇날 며칠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짜내고, 대본화하고, 피디의 결재까지 받아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철저하게 인위적인 창조물인 것이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추구하는 리얼 시대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 바로 코미디다.

이러니 추락할 수밖에 없다. ‘개그콘서트’의 위기는 곧 한국 코미디의 위기였다. MBC, SBS에서 모두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코미디 대신에 연예인과 그 가족이 여행하고 음식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상파 유일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된 ‘개그콘서트’엔 악재가 또 있다. tvN의 ‘코미디 빅리그’가 거침없는 센 표현으로 관심을 가져가버렸다. 지상파 ‘개그콘서트’는 그렇게까지 표현 수위를 높이기 어려웠다. 과거와 같은 일차원적 코미디는 높아진 인권 감수성으로 할 수 없고, 풍자의 수위를 높이면 당하는 쪽에서 반발한다. 코미디를 볼 만한 시청자들이 유튜브의 자극적인 개인방송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진 것이다. 이래서 1000회를 기분 좋게 맞이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런 환경에서 ‘개그콘서트’가 과거 인기를 회복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것을 목표로 삼으면 절망감만 커질 것이다. 코미디 약세기라는 걸 인정하고 생존을 1차 목표로 일단 버티면서, 시청자와 소통할 접점을 모색해나가는 질긴 생명력이 필요하다. 자연스러운 예능에 비해 코미디는 인위적 창조물이기 때문에 더 힘들고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코미디의 생존을 응원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는 코미디 표현에 보다 관대해지고, 코미디언들은 보다 수준 높고 신랄한 코미디를 위해 과거보다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 악착같은 생명력으로 코미디라는 종을 지켜나가야 한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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