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북한이 1년 반의 침묵을 깨고 미사일 발사를 재개한 것이 지난 4일과 9일인데, 이후 남·북·미의 대응은 제각각이었다. ‘정상적인 타격훈련’이라며 애써 당당함을 보인 북한이나, “신뢰 위반은 아니다”면서 느긋한 자세를 보인 미국과는 달리 우리 정부의 대응은 구차해 보였다. 한국은 ‘탄도미사일’ 표현을 애써 기피하면서 유엔 안보리 결의 및 남북 합의 위배 여부에 대해서도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핵무기와 화생무기를 빼면 겁낼 필요가 없는 상대”라는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 나왔고, 이어서 청와대가 8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검토한다는 소식도 나왔다. 그래서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진실들을 제대로 짚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지금이 대북 지원을 거론할 타이밍인지도 의문스럽다.

미사일 도발의 핵심 진실은, ‘안보리 결의의 위배 소지’ 정도가 아닌 ‘명백한 위배’라는 사실이다. 2009년에 채택된 안보리 결의 제1874호는 사거리의 장단(長短)을 불문하고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하며, 2013년에 채택된 제2087호 역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금지한다. 제2094호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또는 핵실험 시 안보리가 상응 조치를 하도록 한 트리거 조항을 포함한다. 팩트대로라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1874·2087호 위반으로 선포돼야 했고, 트리거 조항에 따른 추가 조치가 취해졌어야 했다. ‘적대행위 중지와 적대관계 해소’를 골자로 하는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과 적대행위 중단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담은 군사분야 합의에 위배된다는 사실도 천명했어야 했다.

짚어야 할 또 하나의 진실은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이 의미하는 안보 위협이다. 아직은 북한이 쏜 미사일이 이스칸데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러시아로부터 이스칸데르를 제공 받았거나 러시아 기술로 북한이 생산하고 있다면, 대한민국에 새로운 차원의 안보 위협이 추가됨을 의미한다. 이스칸데르는 유럽 신냉전의 상징적 존재로, 이동발사대에서 발사되는 고체연료 탄도미사일로서 변칙 궤적을 비행하기 때문에 한국군의 선제(킬체인)와 방어(KMAD) 체계는 물론 미군의 사드(THAAD) 체계까지 무력화될 게 뻔하다. 이런 가능성을 보면서도 태연스럽기만 한 정부와 국방부의 자세를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사실, 북한의 당당함은 초조함의 표현이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강공·굴복·현상 유지 등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지만 어느 것 하나도 쉬운 선택이 아니다. 다시 세계에 맞서기도 부담스럽고 병진정책의 체면과 지도자의 존엄을 훼손하는 굴복을 택하기도 어렵다. 결국, 이번 미사일 도발은 나름 레드라인을 계산하면서 미국에 ‘가짜 비핵화’를 수용하라고 외친 노이즈 마케팅이며, 한국에는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우리민족끼리’에 본격 동참하라”는 협박이었다. 이런 때에 전직 국방장관이 난해한(?) 발언을 하고 이어서 정부가 협박에 굴복하는 듯 대북 지원에 나서는 것이 북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의문스럽다.

핵 협상은 장기전이 불가피하고 남북 상생을 위한 노력은 중단없이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탄도미사일을 탄도미사일이라 부르지 못하고 안보리 결의 위배를 위배라고 하지 못하는 식의 저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북한을 제대로 관리하는 방법이 아닐 뿐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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