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지금도 무소불위인 노조의 위세를 더 부추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절차에 착수한다고 선언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미비준 4개 핵심협약 가운데 3개 협약에 대해 비준을 추진하겠다”며 9월 정기국회에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뜻을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선(先)입법 후(後)비준’ 원칙을 내세워왔으나, 별다른 설명 없이 노동계가 주장해온 ‘선비준’ 입장으로 뒤집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10개월 간 노·사 논의 끝에 20일 합의 무산을 공식화한 지 이틀 만에 직접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산업계의 염원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경사노위에서 무위로 끝난 뒤 방관해온 처신과 상반된다. 노조에 일방적으로 기운 정부임이 분명하다.

단결권 보호와 자율적 단체교섭을 앞세운 ILO 협약 87호와 98호는 노사 현실에선 가당치 않다. 그 조항들이 국내법적 효력을 획득하면, 해고자·실업자·고위공무원도 노조원이 될 수 있다. 불법 행위나 비리로 나간 직원이 노조 간부가 돼 회사 측과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시민단체 관계자가 노조에 가입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잖아도 주문 물량이 밀려도 생산 라인을 늘릴 수 없을 만큼 노조 권력이 득세하는 판이다. 산별노조 위주의 유럽과 기업별 노조가 주력인 한국 실정은 크게 다르다. 법외노조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합법화 길도 열린다. 무노동 무임금,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원칙도 무력화된다.

문 정부가 글로벌 노동 기준을 말하려면 ILO 비준보다 선결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파업 시 대체근로를 전면 금지한 나라는 한국과 말라위뿐이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형사 처벌하는 한국과 달리 민사 책임만 묻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 ILO 분담금의 절반을 내는 미국도 8개 핵심협약 중 6개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경제·사회 전반의 손실과 대혼란을 자초할 ILO 비준은 시기상조다. 당장 단념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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