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경을 넘으려던 중남미 어린이들이 체포·억류됐다가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숨지는 비극적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최근 1주일 새 미 불법이민자 수용시설에서 아동·청소년 3명이 구금 중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으로 인도주의 위기가 심화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3일 BBC에 따르면 미국 보건복지부는 전날 한 언론 답변을 통해 “지난해 9월 엘살바도르 출신 10세 소녀가 난민재정착지원센터(ORR)에 머물던 중 심장질환을 앓아 수술했지만 고열, 호흡기질환 등으로 끝내 숨졌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8개월 동안 미국 남쪽 국경에서 구금·석방 직후 사망한 이민자 자녀는 6명으로 늘었다.
과테말라에서 온 16세 소년 에르난데스 바스케스도 텍사스주 국경순찰대에 붙잡혀 구금 중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다 지난 13일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바스케스는 연방 법률이 정한 구금기간(3일)의 두 배인 6일간 억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4일에는 2세 아이가 텍사스주 엘파소의 미·멕시코 국경에서 체포됐다 구금된 지 한 달 후 사망했다. 지난 4월 30일에도 과테말라 출신 16세 후안 데 레온 구티에레스가 뇌염으로 숨졌다. 구티에레스는 같은 달 19일 엘파소에서 국경순찰대에 붙잡혀 어린이 이주민보호소로 보내졌다.
지난해 12월에도 과테말라 출신 7세 소녀가 구금 중 탈수와 쇼크 증세를 보이다 숨졌으며, 또 다른 과테말라 출신 8세 소년도 구금시설에서 고열, 구토 증세를 호소하다 병원 이송 후 몇 시간 만에 사망했다.
중남미 이민자 아동들의 비극적 사망 소식에 미국 안팎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날 열린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청문회에서는 이민자 아동들의 잇따른 사망을 두고 거센 공방이 벌어졌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 이민정책을 밀어붙여 아동들이 숨졌다고 지적했다.
나네트 바라간(캘리포니아) 의원은 “정부 감시 아래 어린이들이 죽어간다”며 “아이들의 사망기록을 자랑스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중남미계 의원단체인 히스패닉 코커스의 호아킨 카스트로(민주·텍사스) 의원도 사망한 엘살바도르 소녀에 대해 언급하며 “어떤 아이가 죽거나 중상을 입었는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해왔는데도 정부는 8개월 동안 죽음을 은폐했다”고 말하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이 소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전략의 하나로 강도 높은 반이민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기대했던 정책 성과 대신 곳곳에서 파열음만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비용 마련을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미 상원은 이를 무력화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무관용 가족격리 정책’에 따라 지난해 5~6월 미·멕시코 국경에서 2000명 이상의 미성년자를 불법이민자 부모와 격리해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겨냥해 반이민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