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왼쪽) 영국 총리와 남편 필립 씨가 23일 소닝에 마련된 유럽의회 선거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한 뒤 걸어 나오고 있다.  AP 연합뉴스
테리사 메이(왼쪽) 영국 총리와 남편 필립 씨가 23일 소닝에 마련된 유럽의회 선거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한 뒤 걸어 나오고 있다. AP 연합뉴스
320만명 달하는 EU출신 주민
7일까지 사전등록 해야하는데
英당국, 당일에야 “선거 참가”
투표인 명부서 대규모 누락돼

“참정권 박탈 넘어 기본권 침해”
유권자들 대규모 소송 가능성


세계 2위 규모의 투표인 유럽의회 선거의 시작을 알린 의회민주주의 본산 영국이 절차적 실수로 선거 운영에 파행을 겪고 있다. 자국 내 유럽연합(EU) 출신 거주자들이 투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국제적 망신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투표권을 박탈당했다는 유권자들의 대규모 소송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 지는 이번 사건을 ‘민주주의의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23일 BBC, 인디펜던트, 가디언 등은 영국 내 거주하는 EU 회원국 주민 상당수가 투표소에서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한 채 돌아서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유럽의회 선거는 영국인뿐 아니라 18세 이상 EU 회원국 주민에게도 투표권이 있는데, 이들의 투표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영국 거주 EU 출신 주민은 320만 명에 이른다. 다만 이들 외국인(몰타·아일랜드·키프로스 국적자 제외)은 지난 7일까지 사전등록 절차를 거쳐 모국 대신 영국에서 투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하는데 이 과정이 촉박해 제대로 투표권 행사 접수가 이뤄지지 않았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추진하며 선거 참가 여부를 고민하던 영국은 7일에야 데이비드 리딩턴 국무조정실장이 선거 참가가 불가피하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실제 많은 EU 출신 주민은 투표장에 갔다 투표인 명부에 든 자신의 이름에 검은 줄이 그어져 있고, 선거 관계자들로부터 투표할 수 없다는 말만 듣고 있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심지어 사전에 절차를 마쳤는데도 유권자 등록이 되지 않은 경우도 나오고 있는데, 영국에 5년간 거주해온 독일인 모리츠 발레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서식을 지난 4월 말에 우편으로 받아서 5월 2일에 관련 부처에 보냈는데도 투표인 등록이 되지 않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행정 착오를 넘어 유권자들의 ‘참정권 박탈’이라는 기본권 침해라고 영국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영국 거주 EU 주민들의 경우, 대부분 브렉시트에 반대하지만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총선이나 국민투표 등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전달할 수 없었다. 유럽의회 선거는 개인들의 정치적 의사를 전달할 유일한 통로였지만 그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제2 국민투표를 추진하는 등 브렉시트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노동당은 수많은 표를 잃을 수 있다며 영국 정부를 강하게 질타하고 나섰다. 데이비드 래미 노동당 하원의원은 “투표 실수로 외국계 주민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살고 싶어 하는 거주이전의 자유마저 제대로 묻지 못했다”며 “추악한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U 법 전문가인 애널리 하워드 변호사는 영국 정부가 심각한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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