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7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7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롭지 않은 수사” vs “증거인멸은 범죄”

유해용 “별건·표적수사 동원”
검찰 “중대 범죄혐의 드러나”
29일엔 양승태·박병대 공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전·현직 고위 법관들이 27일 무더기로 피고인석에 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첫 공판도 오는 29일 열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이 이번 주 본격화된다. 최고의 법률 전문가들이 피고인석에서 적극적인 자기 변호에 나서면서 사상 초유의 법리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박남천)는 이날 오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첫 공판을 열었다. 유 전 연구관은 2016년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부탁으로, 당시 비선진료를 맡았던 김영재 부부의 특허소송에 개입해 소송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 등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혐의 등을 받는다.

유 전 연구관은 이날 “5∼7분짜리 (발언을) 준비해왔다”면서 미리 준비한 자료를 검찰과 재판부에 전달하고 직접 변론에 나섰다. 그는 “사법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인 만큼 수사 절차가 공정한지도 낱낱이 역사에 남겨야 한다”며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 영장에서 벗어난 별건 압수수색, 언론을 통한 대대적인 피의사실 공표, 과잉·표적 수사 등 정의롭지 않은 방법이 동원됐다”고 지적했다.

검찰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검찰은 이 자리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 농단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 범죄혐의, 증거인멸이 드러나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며 “증거인멸 자체가 범죄혐의인데 이 부분을 가볍게 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오는 29일 첫 공판이 열리는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현장에서도 이런 모습은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월 보석 심문 기일에서 13분간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지적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공소장을 만들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당시 생소한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義)’ 개념을 들고나오기도 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검사가 기소할 때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내야 하며, 판사와 배심원에게 예단을 주는 서류를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하지 말라는 원칙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 3월 검찰이 압수한 USB 속 파일의 증거능력을 두고 2시간 가까이 ‘영장주의 원칙’에 대한 열변을 토했다. 그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검찰 USB 압수 경위가 위법하다고 설명하며 “단순히 경미한 것이 아니라 5가지 유형에 해당해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법정에선 “웬만한 변호사들도 흉내 내지 못할 변론”이라는 말이 나왔다.

고위 전·현직 법관들을 상대해야 하는 재판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유 전 연구관이 지난달 24일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능력을 재판부에 촉구하자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가 “변호인들은 좋겠다. 어려운 숙제를 내주고 결정하라고 하면…”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김윤희·이희권 기자 worm@munhwa.com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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