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신조 아베(晋三安倍)가 아니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로 써줬으면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재인 문,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을 진핑 시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은 지난 21일 “세계 각국의 언론매체에 일본인 성명의 로마자 표기를 성·이름순으로 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고노 외상은 “지난 1일 레이와(令和) 새 시대가 개막됐고, 6월엔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며 내년에 도쿄(東京)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고도 했다. 새 일왕 나루히토(德仁) 즉위 및 국제적 이벤트를 일본인 영문 이름 표기 관행 변화의 계기로 삼겠다는 의미다.

동북아시아의 한·중·일 3국은 이름 표기 때 성 다음에 이름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1876년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조선과 청나라 문명에서 벗어나 서양과 함께해야 한다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우면서 이름의 영문 표기도 서양식 원칙을 준용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본에서는 한·중 양국은 자국의 관행대로 성·이름을 표시하는데 일본만 서양식으로 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일었다. 일종의 ‘탈구입아’인 셈이다. 마이니치(每日)신문 등이 지난 3월부터 이 같은 주장을 주도했다. 고노 외상은 자신의 영문 트위터에 이름을 ‘KONO Taro’로 표기하고 영어로 글을 올리고 있다.

아베 정부의 영문 이름 표기 순서 교체를 국수주의적 발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 공영라디오 NPR는 “일본 이름의 영문 표기순서를 바꾸려는 것을 우파 국수주의 발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 전했다. 정부 주도의 그런 시도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나루히토 시대의 첫 국빈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1차 실험을 해 본 셈인데, 실패했다. 미국 주요 매체들이 무시해버렸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은 물론 AP와 AFP, 로이터 등 글로벌 통신사들도 모두 ‘아베 신조’ 대신 ‘신조 아베’로 썼다. 각국 언론들은 AP 스타일북의 인명표기법을 기준으로 삼는데, 여기에 한·중 양국의 인명은 성을 먼저 쓴다는 점이 명시돼 있지만, 일본 이름 표기에 대해선 특별한 항목이 없다. 150년 가까이 정착된 관행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겠지만, 일본의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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