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88년 미·소 두 지도자는
상대 취향, 마음까지 파고들어
심리적 융합 이뤄내 냉전 종식
한국의 G20 참여는 공짜 아냐
정상간 친밀감 증대가 원동력
문 대통령, 실리 친교술 배워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5∼28일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일본을 국빈방문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의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41년 진주만을 공격했던 일본 항공모함 이름을 딴 해상자위대 호위함 ‘가가’에 올라 연설했다. 과거를 묻고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에 참여시키려는 실리 외교 포석이다. 두 정상 간 증강된 소통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체제의 한국에는 코리아 패싱 또는 한국 변방화의 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 더구나 요즘 트럼프 대통령도, 아베 총리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미·일과 달리 한·미 관계는 불협화음이 잦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에서 “보물 같은 동맹”을 말하기 직전에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한·미 양국의 엇박자를 지적하는 보고서를 냈다. 이런 좁아진 외교 입지로는 국익을 지켜내지 못한다.
서로의 국익이 부딪치는 정상외교에도 인지상정 영역은 존재한다. 국제정치에서 지도자 간의 상호 신뢰가 역사를 만들었던 감성 외교의 사례는 많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여가 처음부터 당연했던 건 아니었다. 2008년 11월 미 워싱턴 첫 정상회의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참여하기까지 긴박한 고비가 많았다. 미국 민주당계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는 보고서에서 G16을 제안하는 식으로 한국 배제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런데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정식 회원국으로 한국을 전격 결정했다. 7개월여 전 캠프데이비드에서의 골프 회동, 부시와 가까운 사이로 이 전 대통령이 공들여 친분을 쌓았던 당시 케빈 러드 호주 총리의 적극적인 천거가 없었다면 실패했을 외교였다. 그래서 “부시가 한국에 준 선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6월 28∼29일 일본 오사카(大阪) G20 정상회의에 문 대통령은 당연히 참석하고, 한국 입장을 설득할 기회를 갖는다.
상대국 정상의 마음을 얻기 위한 무던한 노력은 사실 고달프지만, 많은 정상이 마다하지 않았다. 소통의 리더십으로 유명한 로널드 레이건이 밝힌 냉전 종식 회담의 성공 비결은 “인간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다. 1985∼1988년 제네바, 레이캬비크, 워싱턴, 모스크바 회담까지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믿음을 쌓는 작업은 지난했다. 러시아 문화사학자 수전 매시를 5년간 22번이나 만나 역사를 공부했다. 고르비란 인물에 대한 탐구는 물론이다.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와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의 인간적인 중재도 활용했다. 외교수장이었던 조지 슐츠와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간에 구축된 우정은 난항 때마다 동력을 되살리는 밑바탕이 됐다. 레이건은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불신하는 게 아니라 불신하기 때문에 무기를 갖고 있다”며 말끝마다 신뢰를 강조했다. 고르비는 개인적 친분의 의미를 강조하며 “레이건과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났다”고 평가했다. 레이건은 “화학 반응은 하룻밤 만에 찾아온 게 아니었다”고 화답했다. 1983년 3월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했던 레이건은 1988년 5월 모스크바에서 “(그 평가는) 다른 시대의 얘기였다”는 말로 회담의 대미를 장식했다.
신냉전, 무역·기술 전쟁의 시대적 상황과 유관국가 수까지 고려하면 북핵 문제는 냉전보다 더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만큼 고차원의 접근 방식과 해법이 필요하다. 감성 외교를 굴욕 외교로 치부해 배제할 일이 아니다. 문재인 청와대가 언제 트럼프, 시진핑, 아베의 사고방식, 취향, 개인사, 가족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탐구했는지는 의문이다. 빅딜은 틀렸고, 굿이너프딜이 옳다는 식의 공허한 논쟁만 벌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북한만 설득하면 된다는 식의 1차원적 접근에 매달리고 있다. 강대국들의 이해가 소용돌이치는 토네이도 중심에 있음에도 마치 무풍지대에 있는 것처럼 코디네이터를 자임하는 일은 이제라도 거둬들여야 한다. 중재를 하려면 모든 당사자를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은 물론, 그들보다 몇 배의 협상력과 카드도 겸비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동맹을 주축으로 관련국들의 이해를 조정하는 전략만이 국익을 지켜내는 최대의 실리외교라는 점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문 대통령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엉뚱한 길만 헤매고 있다.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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