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8일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게임중독)를 질병으로 분류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을 최종 의결했다. 게임중독은 정신적, 행동적, 신경발달장애 영역에 하위 항목으로 포함됐다. 30년 만에 개정된 ICD-11에서는 질병 코드가 5만5000개로 크게 늘었는데, 게임중독뿐 아니라 음란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섹스중독,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강박 증상, 수감 상태에서 일어나는 변화 등에도 새로운 질병 코드가 부여됐다. ICD-11은 원칙적으로 194개 WHO 회원국에서 2022년 1월부터 권고사항으로 적용된다.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WHO의 결정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 안에서도 상반된 의견들이 강하게 충돌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WHO 결정이 발표된 다음 날, 게임이용장애 관련 민·관 협의체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복지부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 예방과 치료 예산을 배정할 수 있고, 게임 회사에 게임중독 관련 공익기금의 조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반면에, 게임 산업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WHO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반발하면서 복지부가 추진하는 민·관 협의체에 불참한다는 의견을 냈다. WHO의 게임중독 질병 분류를 두고 정부 부처 간에 대립이 심해지고 게임 관련 업계와 학술 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국무조정실이 이견 조율에 나서기로 했다.
사실 게임중독이라는 표현은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되지만, 그 개념은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게임중독은 게임 장애, 게임 과몰입, 게임 과의존, 게임 과사용 등의 개념과 혼용된다. 또한, 게임중독에 대한 관점도 서로 달라서 공통적인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이번 WHO의 결정처럼 게임중독을, 치료가 요구되는 심각한 질병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게임을 담배·술·도박·마약 등과 유사하게 취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게임중독을 도박중독이나 마약중독과 같은 차원의 심각한 질병으로 다루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의견 또한 있다.
게임중독의 측정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 게임중독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게임중독을 인터넷 중독의 하위 개념으로 간주하는 것인데, 일반적인 척도로 게임중독이라는 특수한 현상을 측정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또 다른 방법은, 게임이 고유한 특성을 갖는 점을 고려해서 별도의 측정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게임중독은 게임의 특성, 개인적 특성, 환경적 특성 등 다양한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관점들을 통합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측정 도구는 아직 없다. 또한, 다양한 게임 장르나 플랫폼의 종류 간의 차이를 고려한 측정 도구도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게임중독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기에 게임중독이 질병이라는 과학적인 결과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게임산업은 국내 시장이 약 14조 원 규모이고 전체 콘텐츠 산업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효자 산업이다. 우리나라는 e스포츠 강국이기도 하다. 또한, 게임은 문화이며 사람들은 게임을 문화로 즐길 수 있는 자유를 가져야 한다. 정부가 WHO의 결정을 국내에 적용하려면 우선 게임중독의 개념을 정립하고 제대로 측정해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게임중독의 질병 분류를 성급하게 받아들인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밖에 없음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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