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지중해에서 이주민 700여 명을 태운 채 침몰한 어선을 주제로 한 크리스토프 뷔헬의 작품 ‘바르카 노스트라(Barca Nostra)’.  베니스 항구에 설치돼 있다.   정준모 제공
2015년 지중해에서 이주민 700여 명을 태운 채 침몰한 어선을 주제로 한 크리스토프 뷔헬의 작품 ‘바르카 노스트라(Barca Nostra)’. 베니스 항구에 설치돼 있다. 정준모 제공

‘흥미로운 시대…’ 주제 주목
사회에 무관심한 세태 경고


다시 베니스에 왔다. 어른들의 디즈니랜드라고 하지만 이젠 너무나 세계 도처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탓인지 그리 반가운 기색은 없다. 사실 베니스는 언제부터인가 수용 능력보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는 오버투어리즘과 관광객들 때문에 주민들이 밀려 나가야 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의 상징 같은 공간이 됐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베니스는 관광객들을 불러 모을 많은 프로그램을 찾아내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도 그중 하나다. 예전에는 개최 기간이 4개월 정도였지만 몇 년 전부터 6개월로 연장해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많은 이가 순례자처럼 현대미술의 향연장을 찾지만 글쎄 ‘현대미술’이란 것이 그리 친절한 것은 아니어서 “혹시나 하고 왔다가 역시나 모르겠군”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여전하다. 그래서 많은 이가 주제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이번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이다. 언론에서는 이를 ‘흥미로운 시대를 살아가길’이라고 번역해 소개했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 매우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의미의 말이다. 주제를 선정한 예술감독 랠프 루고프(Ralph Rugoff, 1957~)의 고민처럼 전 세계 300여 개의 비엔날레 주제가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현대미술이 다루는 문제가 거의 기아, 내전, 경제위기, 난민, 성 소수자, 전쟁, 불평등, 인종, 보호무역, 포퓰리즘과 유사민족주의, 파시즘, 기후변화 등등, 세상의 거의 모든 시끄러운 사안을 문제로 삼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비엔날레의 주제들은 새롭기보다는 대개가 ‘거기서 거기’로 같은 말을 다른 말로 변주해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도 사실 그렇게 색다르지는 않다. 세상에, 특히 서구에서는 이 말이 중국의 속담 ‘영위태평견 모주난리인(寧爲太平犬 莫做亂離人)’에서 왔다고 한다. 대강 풀자면 ‘평화로운 시기에 개로 사는 것이 난세에 인간으로 사는 것보다 낫다’는 뜻이다. 뜻을 새겨본다면 ‘혼란한 시절 사람처럼 살기보다, 태평한 시대의 개처럼 살기’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이 말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왜냐면 이 말은 중국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의 현실적인 처세와 태도 또는 남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과 성격, 특히 자신에게 손해가 될까 봐 원칙적인 문제에 대해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을 빈정거릴 목적으로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이 말은 19세기 영국의 정치인 조지프 채임벌린(Joseph Chamberlain, 1836~1914)이 연설에서 중국인과 아시아 사람들을 비하할 목적으로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 후 그의 아들 오스틴에 의해 전파되면서 유럽에서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욕하는 말로 중국에서 정말 쓰이는 말로 인식됐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프레임 전쟁’ 또는 전형적인 ‘가짜뉴스’의 원조인 셈이다. 오늘날에는 권위 있는 신문이나 방송 때로는 일국의 대통령 입을 통해서도 전파되는 가짜뉴스 그리고 이런 날조된 사실을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이런 시대를 풍자할 속셈으로 이 ‘가짜속담’을 주제로 삼은 것이다.

“그래 이 어려운 시절에 개돼지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니 좋으냐?”라는 정도로 읽을 수 있는 주제는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베니스 비엔날레는 다른 여타의 현대미술 전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예술이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 눈감고 모른 체하며 개돼지처럼 살다가는 정말 개돼지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주제보다는 예술에 대한 ‘개방성’과 예술의 사회적 기능인 즐거움과 비판적인 태도 모두를 포용해 ‘인류의 안정’을 강조하는 모순되고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저글링(Juggling)하듯 던지고(tossing) 잡으면서(catching) 서로 다른 것들을 문맥화하고 있다.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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