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운 논설위원

2001년 9월 11일, 미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하고 정신 차릴 순간도 없이 하루가 저물었다. 콜로라로주 덴버의 어느 레스토랑. TV에서는 음향 없이 사건 속보 화면만 바뀌고 있었다. 한순간 노랫소리가 들렸다. 젊은 부부가 어린 아들을 위해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아들은 케이크의 촛불을 껐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누군가 박수를 쳤다. 크지는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축하 박수를 쳐줬다. 참사 속에서도 일상은 이어지는 것이다.

며칠 뒤부터 TV에서 ‘나는 미국인입니다(I am an American)’라는 캠페인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청년, 노인, 어린이, 남성, 여성,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수염을 기르거나 히잡을 쓴 무슬림 남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나는 미국인이라고 다짐하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2001년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한 김병현이 맹활약하며 월드 시리즈 결승 마운드에까지 올랐던 해다. 9·11 이후 잠시 중단됐다 재개된 메이저리그 경기에서는 7회 시작 전에 한 사람씩 마운드에 올라 ‘미국에 신의 축복을(God bless America)’이란 노래를 불렀다. 상처를 치유하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국 사회의 최우선 처방은 ‘통합’이었다.

헝가리 유람선 참사에 누가 안타까워하지 않고 애도하지 않겠는가. 나라 전체가 정치적으로도 긴장하고 있다. 대통령은 예정된 오찬을 취소했고, 군은 회식을 강행했다가 비난을 받았으며, 외교부 장관이 사고 현장으로 날아갔다. 현 정부는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 대응을 선택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세월호 참사가 큰 이유가 됐고, 현 정권이 그런 공격에 앞장섰던 것이 더 적극적 대응을 이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사회는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든, 외국이든, 배 침몰 사고에 대통령의 직접적 책임은 없다. 과잉 대응과 옳은 대응은 다르다. 어느 쪽으로든 정치적 이용은 없어야 한다. 희생자와 가족의 슬픔을 공감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사고 수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모으고, 일상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참사를 줄이는 일이다. 과연 그렇게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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