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나한상을 살펴보고 있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은 500여 년간 땅속에 묻혀 있다가 2001년과 2002년에 우연히 발견돼 복원된 문화재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나한상을 살펴보고 있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상은 500여 년간 땅속에 묻혀 있다가 2001년과 2002년에 우연히 발견돼 복원된 문화재들이다.
스피커 700여 개를 탑처럼 쌓아 올리고 그 사이에 나한상 29구를 배치한 설치미술 작품. ‘도시 일상 속 성찰하는 나한’을 표현했다.
스피커 700여 개를 탑처럼 쌓아 올리고 그 사이에 나한상 29구를 배치한 설치미술 작품. ‘도시 일상 속 성찰하는 나한’을 표현했다.
- ‘창령사 터 오백나한’展 예상밖 인파… ‘나한상’ 왜 인기일까

무기교의 인간적 표정 매력
마치 영화 한 편 본 듯한 감동
관람객 “위로 받은 기분 들어”

한 달여간 2만5000여명 입장
전시 기간 16일까지 연장키로


‘당신은 당신으로부터 자유스럽습니까’. 전시장 입구의 안내문부터 여타 전시와 다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먼저 어둠과 정적이 방문객을 맞는다. 허공 높이 새소리, 벌레 소리가 바람 소리에 뒤섞이고, 그 사이로 민요 가락도 잔잔히 흐른다.

어둠에 익숙해지자 나한의 얼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가사 밖으로 손을 내민 나한’ ‘미소 띤 나한’ ‘이야기하는 나한’ ‘소매를 걷어 올리는 나한’ ‘선정에 든 나한’…. 좌대에 희미하게 쓰인 나한들의 이름도 보인다. 모두 하나같이 못생겼지만 정겨운 얼굴들이다. 전시된 좌대 바닥의 벽돌에는 경구들이 쓰여져 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픈 데는 없고’ ‘넌 지금 잘하고 있어’ ‘아버지 사랑합니다’….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모습이다. 입구와 이어진 1부 전시 공간은 독립적인 좌대 위에 창령사 나한상 32구가 설치돼 있고 2부의 별도 전시 공간에는 스피커 700여 개를 탑처럼 쌓아 올려 그 사이에 나한상 29구를 함께 배치했다. 전시 구성에는 설치미술가 김승영 씨도 함께했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지난 4월 29일 전시 개막 후 2일 기준 모두 2만5000명 이상이 다녀갔고, 주말에는 평균 1500여 명이 전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평소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다른 전시 관람객의 3배 이상 숫자다. 국내 문화재 전시에 이처럼 인파가 몰리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게다가 그동안 문화재 전시 관람객 대부분이 ‘학생 단체’였던 것과 달리 ‘가족 단위’로 오거나 ‘50∼60대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 것도 특징이다.

전시를 기획한 최선주 미래전략담당관은 “기존의 시대별, 장르별로 분류해 소장품을 교과서적으로 나열해 보여주었던 문화재 전시와 달리 이번에는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 점이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한 것 같다”고 말했다. 퇴직한 남편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이귀선(62·경기 구리시) 씨는 “온갖 희로애락의 감정이 표정에 가감 없이 드러나 있는 나한상의 얼굴을 보다 우연히 바닥 벽돌에 쓰여져 있는 경구를 읽게 됐는데 왠지 모르게 ‘찡’해지면서 나 자신이 ‘위로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유의 화강암 조각에 배어 있는 우리 전통 조형미 역시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복 성신여대 조각과 교수는 “서구의 매끄럽게 다듬어진 대리석조각과 다르게 화강석으로 거칠고 투박하게 조각돼 서구와 다른 한국미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봉수 홍익대 미대 교수는 “나한상은 ‘무기교의 기교’로 만들어졌다”며 “깨달음을 향한 수행자로서의 의지와 혹독한 수행의 과정들이 ‘너무나 인간적인 표정’으로 담겨 시선을 못 떼게 한다”고 말했다.

또 심영철 수원대 미대 교수는 “나한상에서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백제의 미소’를 발견할 수 있다”며 “백자의 단아하고 순박한 깊이, 막사발에서 느껴지는 질박한 맛처럼 나한상은 꼭 필요한 부분만 슬쩍슬쩍 터치하고 단순하게 표현, 오히려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고 평가했다.

사실 박물관 하면 그동안은 전시된 고고 유물을 둘러보며 우리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곳 정도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번 오백나한전을 보고 나면 마치 잘 만든 영화 한 편을 감상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된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박물관이 지식전달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공간이지만 안식처로서의 사회적 가치를 수행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앞으로 박물관의 그 같은 역할을 더욱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물관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당초 13일까지 예정돼 있던 전시를 16일까지로 연장했다. 이와 함께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전시장 미소음악회’를 5일, 12일 특별전시실에서 개최한다. 범패와 대금 독주 ‘상령산’, 가곡 ‘우조 우락’이 연주되며 움직임이 적은 절제미의 ‘나비춤(불교의 의식 무용)’ 공연도 선보인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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