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희킴, Hand to Hand, 구아슈 35×23㎝, 책 위에 홀로그램, 2016
지희킴, Hand to Hand, 구아슈 35×23㎝, 책 위에 홀로그램, 2016
도서관엔 무수히 많은 신간 서적이 들어오지만, 또 일정량이 나가기도 한다. 기증이 됐든 폐기가 됐든 말이다. 단 한 번의 열람 기록도 없이 서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가도, 모종의 지적 권력투쟁에서 밀리면 권좌를 내줘야 하는 슬픈 운명의 책들이 적지 않다. 물론 다른 저장 매체를 통해 그 콘텐츠 기록은 남아 있겠지만, 신성시돼온 책들의 방출은 적지 않은 충격이다.

작가 ‘지희킴’에게 건네진 책들은 그나마 덜 기구한 사주를 타고났다. 마치 의과생 수술 공부를 위해 기증된 시신 다루듯 엄숙하고 경건하게 해부되고 필요에 따라 방부처리를 해서 보존하기도 한다. 기존의 텍스트는 해부와 봉합이 거듭되며 의미가 소거된다. 저자의 죽음을 확인해주듯 저자의 신원은 이제 고고학의 몫이 됐다.

책의 텍스트와 작가의 텍스트가 재구성으로 조우하는 데서 구현되는 의미가 명확하지는 않다. 책 오브제 연작들 가운데, 유독 손 이미지가 많다. 얼핏 이 책장들을 넘긴 손들의 잔상일까, 아니면 초월적 교감을 이어온 세계에 대한 사유일까. 아니면 범람하는 정보들에 자리를 내준 지식의 종말에 대한 진혼의 의식일까.

이재언 미술평론가·인천 아트플랫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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