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DGIST 석좌교수 커뮤니케이션학

요즘 오가는 정치인의 ‘막말’은 국민의 품격에 훨씬 못 미치는 거의 ‘망나니’ 수준이다. 그 중의 압권은 한때 집권당의 대표까지 지낸 원로 김무성 의원의 “4대강 보 해체를 위한 다이너마이트를 빼앗아 문재인 청와대를 폭파시키자”이다. 그리고 야당 대표에 대한 여당 의원의 ‘사이코패스’ 변호, 그 반발로 나온 야당 의원의 대통령에 대한 ‘한센병자’ 호칭, ‘김정은보다 못한 문재인’으로 나갔다. 이런 막말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 행위의 기본 조건은 우선 낚아채고 고민하든지 아니면 고민한 뒤 낚아채는 두 가지 양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전자의 사례는 충동구매, 후자의 사례는 기획구매다. 홈쇼핑 방송에서 보는 것처럼, 충동구매를 성공시키는 핵심은 촌각을 다퉈 인간의 주목을 극대화시키는 데 있다. 정치인의 막말은 바로 유권자의 충동구매를 유발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그런 주목의 극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극단적인 단순화가 주목 끌기의 핵심이다. ‘적폐청산’과 ‘좌파독재’의 프레임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전자로 문재인 세력은 권력을 거머쥐었고, 후자로 야당은 전세를 뒤엎으려 하고 있다. 엄격하게 말해서 이들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막말이다. 양쪽 모두 상대를 병자(病者) 취급하진 않지만, 여전히 극단적인 집단으로 낙인 찍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분법적 단순화는 필연적으로 국민의 의식을 양극화로 치닫게 만든다. 투표의 선택행위가 양극화의 충동적인 주목에 휘둘리는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데서 현대 민주주의의 약점을 보게 된다. 정치가 국민통합을 지향하기보다 분열된 자기 세력을 집결시키는 데 노골적으로 몰두하고 있다.

투표 선택을 놓고 충동구매를 부채질하는 데 기여한 것 중의 하나는 불행히도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다. 범람하는 정보 채널과 정보 홍수 속에서 극단적인 단순화로 몰아간, 이른바 ‘사이다’ 발언이 아니면 어떤 것도 주목을 끌기 어려운 형국이다. 정보 채널의 경쟁은 단발 경쟁으로 치닫게 만들었고, 하버드대의 역사학자 질 르포어가 최근에 저널리즘의 현실을 개탄한 것처럼, 언론이 수용자를 보다 절박하게 쫓아 나설수록 그것은 양극화로 치닫는 정치를 닮아갔다.

이런 형국은 또한 무엇이 공동체에 더 필요한 정보인지를 걸러주는 역할을 해줬던 정통 언론의 게이트키퍼, 편집자, 편성자, 그리고 학자들을 몽땅 무력화시켰다. 이 틈을 이용해 성장한 것은 불신의 음모론과 가짜 뉴스이고, 이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전 세계 민주사회의 현실이다.

이런 역기능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집권 세력의 자세다. 내년 4월 총선에 눈이 멀어 국민통합을 저버리고, 자기 세력의 결집에 집중하려는 국민 분열적 정치 행태를 지속하는 한 막말의 정치는 더욱 범람할 것이고, ‘더불어 민주주의’는 한낱 구호일 뿐이다. 그간 ‘적폐청산’의 구호 아래 절대로 불가능한 ‘절대진실’을 앞세우고, 헌법 제13조 1항인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마저 교묘하게 무력화시키는 절대적 근본주의를 추구하지 않았는지, 그것은 결국 보복 정치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고 진실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인지 반성할 일이다.

집권 세력의 성찰이 없는 한, 분열정치의 충동구매 유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야당의 막말은 더욱 거칠어질 게 뻔하다. 남은 임기 중 대통령 문재인의 이름으로 통합의 정치, 그래서 품격 있는 민주정치가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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