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논설위원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 등 미국의 거대 IT 기업 4곳에서 지난해 로비자금으로 쓴 돈이 5500만 달러(약 650억 원)다. 1년 새 2배로 늘었다. 이들 IT 기업은 혁신 기술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만큼 정부·의회의 견제를 받고 골칫거리도 쌓여간다. 구글·페이스북 CEO는 지난해 각각 의회 청문회에 불려갔다. 미국 전체 기업 중 로비 규모 1위에 오른 구글만 해도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보안, 반독점, 관세·통상, 무인자동차 등 수십 개의 이슈에 휘말려 있다.

미국 정치의 본산 워싱턴에서 로비는 정부·관광과 함께 3대 ‘산업’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공공연하다. 백악관에서 세 블록 떨어진 ‘K스트리트’가 로비 집산지다. 이곳을 채운 로비스트와 법률·컨설팅·PR회사들이 대정부 관계(GR·Government Relation), 곧 대관(對官)업무를 통해 워싱턴 정치를 움직인다. 정치와 경제 간 접착제, 혹은 윤활유 역할이 많다. 투자 효율은 높다. 로비자금 1달러당 정부 예산 28달러가 배정되더라는 분석도 있다. 정치하러 워싱턴에 왔다가 공직을 잃은 뒤 로비스트로 쭉 머무는 사례는 흔하다. 4개 IT 공룡이 올해 1분기 로비스트로 등록한 238명 중 75%가 정부·정계 출신이다.

국내에서도 대관 서비스 시장이 부쩍 커지는 추세다. 주 고객은 물론 기업이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오랫동안 자체 대관 조직을 꾸려 정부·지자체·국회를 상대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의견을 전달해왔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등의 여파로 그룹 컨트롤타워 조직이 해체·축소된 데다 전경련 무력화, 김영란법 여파까지 겹치면서 아웃소싱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최대 수혜자가 대형 로펌이다. 로비스트 제도가 없는 국내에서 합법적 로비는 변호사만 할 수 있다. 대관 서비스 수요가 늘면서 빅4 로펌은 전담 조직을 꾸리는 한편으로 청와대·공정위·금감원·국세청 등 파워 기관, 국회, 경제단체 등의 고위직과 전문가를 영입해왔다. 대관 업무가 주력인 다국적 기업 GR그룹도 연초 한국에 지사를 개설했다.

기업 대관 업무가 위축됐는데도 대관 시장이 외려 커지는 건 정책 불확실성 탓이다. 문재인 정부가 고강도 경영권·안전·노동 신(新)규제를 추진하자 기업은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안간힘이다. 기존 규제도 힘겨운 터에 규제 신설 비용까지 떠안아야 하는 기업들의 이중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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