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답변’ 들여다보니…

‘김학의件’엔 “엄정수사 기대”
사실상 가이드라인 제시까지
여론의식 중립성 훼손 지적도


청와대가 직접민주주의 구현의 한 방식으로 도입·운영 중인 ‘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을 통해 종종 검·경 수사기관에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입법·사법부의 고유 업무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부응하는 ‘입맛’에 맞는 청원에 대해서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태도로 답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12일 문화일보가 국민청원 답변 요건(30일 동안 20만 이상 추천)을 채워 청와대가 답한 100건을 분석한 결과 나타났다. 이 같은 답변 행태는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삼권분립을 훼손할 소지가 있는 청원, 중앙정부의 역할을 벗어난 사안에 대해 답변이 어려울 수 있다”는 스스로 정한 청원 답변 원칙을 깨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는 ‘김학의 성접대 사건 엄정수사’ 청원에 대한 5월 3일 자 답변에서 “검찰이 수사 중인 만큼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함께 살피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수사가 진행되는 사안에 대해 청와대가 ‘신속·엄정 수사 기대’라는 의중을 드러내며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청와대가 나서 사건 당사자를 ‘억울한 피해자’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는 ‘국회의원 세비 인상 반대’ 청원에 대한 답변(1월 7일)에서는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서 청와대가 국회의원 월급을 결정할 수 없다”면서도 “국민이 (청원을 통해) 거듭 뜻을 모아준 것을 우리 함께 유념해야 할 것 같다”고 주관적인 평가를 덧붙였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에 대해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청원에 대한 답변(2018년 2월 20일)에서는 “판결에 납득할 수 없다는 여론이 (청원에) 반영된 점을 정부도 인지하고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는 청와대가 여론을 내세우면서 우회적으로 사법부 판결을 비판함으로써 재벌·대기업그룹 오너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 장자연 씨의 동료라고 주장하는 윤지오 씨의 신변 보호용 스마트워치 미작동 주장 관련 청원에 대해서는 당국자가 진상 규명 이전에 ‘사과’부터 해 논란이 됐다. 지난 4월 1일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답변 자리에서 윤 씨에게 5차례나 사과했다. 원 청장은 “경찰관의 업무 소홀에 대해 엄중 조사해 조치할 예정”이라며 소속 경찰관에 대한 징계도 예고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스마트워치 미작동은 윤 씨의 조작 미숙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립성을 잃은 답변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빠른 신설 청원에 대해 지난 2월 22일 답변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 사안이 여·야 간 입장 차가 뚜렷함에도 불구, “(공수처는) 권력으로부터 독립돼 촛불 정신을 구현한다. 현재 검찰보다 더 중립적이고 독립적이다”고 규정하고 나섰다.

공수처 설치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지만 보수 야권이 반대하는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 수석의 답변은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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