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차 세일장학재단 이사장이 지난 7일 제주 블랙스톤골프클럽 챔피언전 이틀째 경기에 앞서 연습그린에서 퍼팅연습을 하고 있다.
김오차 세일장학재단 이사장이 지난 7일 제주 블랙스톤골프클럽 챔피언전 이틀째 경기에 앞서 연습그린에서 퍼팅연습을 하고 있다.
김오차 세일장학재단 이사장

50세때 입문… 매일 샷 연습
통증 참고 버티다 큰일날 뻔
열심히 했을뿐 기량 안 늘어
기초 없이 무작정 덤비다가
위기 상황 대처못해 ‘큰 코’

올해 ‘클럽 챔피언’ 첫 도전
악천후에 아쉽게도 컷 탈락
건강 챙기고 실력도 더 키워
‘에이지 슈트’ 달성이 목표


김오차(72) 세일장학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인생은 골프를 배우기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고 말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만 했던 김 이사장은 골프를 배운 이후 일을 하면서도 유일한 취미생활을 즐기며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

지난 6일 제주 블랙스톤 골프클럽에서 김 이사장을 만났다. 김 이사장은 때마침 클럽 챔피언전 시니어 부문에 출전했다. 그는 그러나 첫날 강풍과 폭우로 인해 9홀만 치렀고, 이튿날에도 안개와 바람으로 인해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수없이 많은 라운드를 치렀지만, 타이틀이 걸린 공식대회는 첫 출전이었다. 김 이사장은 “아내의 격려로 참가 신청서를 제출한 뒤 1주일 전부터 매일 라운드와 레슨까지 받아 준비했지만, 긴장한 데다 세찬 비바람까지 몰아치는 악조건으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김 이사장은 1990년대 초 노원구 상계동에 입시전문 세일학원을 설립하며 강남에 버금가는 ‘노원구 학원가’를 만든 주인공. 주민들 사이 “중계동 집값을 김오차가 올려놨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김 이사장은 전남 장성 산간벽지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마치고 맨몸으로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했다. 고교와 대학을 야간 과정으로 마쳤다. 대학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한 끝에 6년 만에 졸업했다. 김 이사장은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대학원 석·박사는 교육학을 전공했다. 대학 강단에 섰다 이후 강남에서 과외로 이름을 날렸고, 입시학원 인기강사로 변신하더니 1993년 학원불모지였던 노원구에 입시학원을 차렸다. 직영 학원이 5곳으로 늘어났고 수강생이 1만여 명, 교직원이 650여 명이었을 때도 있었다.

김 이사장은 살면서 가난에 대해 원망해 본 적은 없다. 가난은 사는 데 조금 불편할 뿐이지 가난 자체가 가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장애물이 될 수는 없다는 신념으로 지금의 삶의 터전을 일궈왔다. 배고팠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가 돈을 벌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장학재단을 만든 것이다. 학원에서 번 돈을 지역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에서 2000년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자신처럼 어려운 청소년들이 작은 용기를 얻게끔 손을 내밀고 마음을 전달했다.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7만5000명의 학원 내 장학생을 배출했고, 지원금은 100억 원을 넘었다. 재단 장학생은 1000명이 넘는다.

그는 1982년 시조시인으로 등단해 시조 협회 회원과 팬클럽 국제분과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학원 경영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장학재단 일만 관여하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수필을 썼다. 얼마 전 ‘백두산 문학’과 ‘문예춘추’에서 신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학원 경영으로 바쁠 무렵이던 1997년 골프를 먼저 시작한 후배의 권유로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후배는 ‘애버리지 골퍼’ 수준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놀랍게 보였다. 취미 생활은커녕 일 외에는 애정을 갖고 즐기는 것이 없던 그에겐 골프야말로 딴 세상이었다. 50세에 시작한 만큼 빨리 배워보려는 욕심으로 오전 6시부터 1시간 30분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했다. 연습한 지 한 달이 됐을 무렵 옆구리에 통증이 찾아왔다. 연습장 프로가 “통증이 몸통 한 바퀴를 돌아와야 제대로 골프를 배운다”고 ‘진단’했기에 ‘정말 그런가 보다’라며 넘겼다. 하지만 연습할 때마다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갈비뼈 여러 개가 부러진 채 방치된 탓에 기형적으로 붙어버렸다”며 “그동안 어떻게 참았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집에서도 골프채로 스윙하다가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조명이 통째로 떨어져 낭패를 당할 뻔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바보 같았지만 골프 열정은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체계적인 지도를 받아 기초 실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는 골프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일처럼 죽을 각오로 쳤고, 부지런만 떨었을 뿐 기량은 생각보다 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전에서 위기상황을 맞으면 대처능력이 부족해 타수를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50대 시절에는 드라이버로 230m를 보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180m 정도만 보내도 대만족이다. 50대 후반에 경기 용인의 태광CC에서 76타까지 쳤지만 요즘엔 80대 타수는 물론 90대 타수도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김 이사장은 학원에서 비교적 가까운 경기 포천의 베어크리크CC 주주 회원이다. 김 이사장은 아내와 함께 제주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볼 생각에서 최근 제주 대정 쪽에 집 한 채를 마련했다. 제주 에버리스 회원권을 팔고 블랙스톤으로 갈아탄 지 1년도 채 안 됐다. 블랙스톤은 블랙스톤 코스가 길고 그린도 한결 까다롭기에 상대적으로 도전의욕이 생긴단다. 에버리스에서는 70대 후반 타수를 곧잘 기록했지만, 블랙스톤에서는 84타가 가장 잘 친 타수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 장학재단을 좀 더 활성화해 장학금과 수혜 학생 수를 늘려갈 계획이다. 사회복지사업에 관심도 있어 60세 때 노인교육 분야 박사학위도 받았다. 김 이사장은 재원이 확보되는 대로 요양병원 2동을 지어 운영할 뜻도 밝혔다. 한 곳은 유료로 운영하고 이곳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가난한 탓에 병원을 찾지 못하는 노인들을 위해 다른 한 곳을 무료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이사장은 “올해는 클럽 챔피언전 첫 도전에서 컷 탈락했지만, 내년에는 챔피언조에 나가기 위해 건강도 챙기고 기량도 늘리겠다”고 말했다. 70대 후반이나 80대 초반에 ‘에이지 슈트’를 달성한다는 목표도 새로 만들었다. 김 이사장은 “골프를 함께 배웠던 아내는 이제 그린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라면서 “골프에서는 서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스크래치 멤버”라고 말했다.

제주=글 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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