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12일 고 이희호 여사 서거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명의의 조전·조화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전달하는 영상을 묵음(默音) 처리해 공개했다. 1분45초 분량의 영상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 도착해 김여정과 인사하고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통일부는 “영상 제공 과정에서 여러 의사 결정 단계가 있었다”며 윗선의 판단임을 인정하면서도 “북측과는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북의 요청도 없었는데 알아서 지웠다는 해괴한 말이다.

김여정의 발언 내용이 무엇이든 남북 고위 관계자가 공개적으로 만났다면 국민은 그 내용을 알 권리가 있다. 통일부 결정은 김 위원장의 ‘심기 경호’를 우선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굴욕적 대북 저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전에도 문 정부는 남북 고위급회담 때 탈북민 출신 기자의 취재를 저지했고,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의 방남 때 “불편해하신다”면서 취재진 접근을 막았다.

정 실장은 북측과 정상회담 협의를 위해 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에도 불참했다. 그러나 북측에서 속 시원한 얘기는 없고, 이날 발언도 기대에 못 미쳤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남북 대화의 유불리에 따라 국민의 귀를 막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13일 6월 중 남북 정상회담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김 위원장 서신에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추가 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면서 서신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데, 문 대통령은 마치 대단한 내용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며 홀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이렇듯 일방적 구애로 일관하니 북한은 더욱더 오만하게 나오는 것이다. 문 정부가 투명하게 대북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와 대북 공조도 어려워지고, 북핵 폐기는 더 멀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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