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영 정치부 차장

문재인 대통령이 ‘6·12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1주년이던 지난 12일 ‘오슬로 구상’을 발표했다. 북유럽 3개국 순방의 하이라이트였던 노르웨이의 ‘오슬로 포럼’에서 ‘국민을 위한 평화’라는 키워드의 대북정책을 내놓은 것으로, “남북한 주민들이 분단으로 인해 겪는 구조적 폭력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7년 7월 문 대통령이 독일에서 발표한 ‘베를린 구상’이 남북관계·북핵에 중점을 둔 정치적 선언이라면, 이번 구상은 한반도 평화가 남북 모두에 득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경제·사회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의 귀를 더 잡아끌었던 이야기는 ‘오슬로 포럼’ 뒤 열린 대담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무대에 올랐던 이네 에릭슨 서라이데 노르웨이 외교부 장관의 조언이었다. 서라이데 장관은 대담을 진행한 로라 비커 영국 BBC 서울 특파원이 ‘분쟁 중재 경험을 공유해달라’는 요청에 “모든 분쟁은 저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 전제한 뒤 6가지 교훈을 요약·정리했다. 1993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중재한 ‘오슬로 협정’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6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① 분쟁 당사자들이 협상을 분명히 원해야 한다 ② 신뢰 구축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③ 장기적 관점에서 인내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④ 정식 협상 개시 전에 분명한 성과를 담보하기 위한 준비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⑤ 정권 교체 뒤에도 이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해야 한다 ⑥ 정치적 리스크(위험)를 감수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이에 비춰보면 문 대통령의 지난 2년여에 걸친 북핵 ‘중재’ 외교는 현재 여러 가지 면에서 난제에 부딪혀 있다. 첫 번째 원칙인 당사자가 협상을 분명히 원하는지부터가 불분명하다. 최근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28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해 11월 일선 부대에 ‘핵 무력 강화’ 지침을 내렸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문 대통령이 이번 북유럽 순방에서 장기적 신뢰 구축을 수차례 언급했다는 점에서 ②·③은 충족됐다고 치더라도 ④·⑤와는 거리가 상당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9∼16일 국빈 방문한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3국의 ‘노르딕 외교’가 갖는 역사적 배경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일한 냉전 지대인 한반도에서 평화 구축 모델 중 하나로 평가받는 1970년대 ‘헬싱키 프로세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1940년대 구소련과 2차례 전쟁을 경험할 정도로 국가존립을 위협받았던 핀란드의 현실주의 정책이 낳은 산물이다. 북유럽 3국이 대화를 통한 평화 중재에 적극적이면서도 인권·자유·환경 등에서 원칙적 목소리를 내는 ‘노르딕 외교’를 정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행히 문 대통령도 지난 15일 스웨덴에서 “미·북 간 협상 진전을 위해서는 사전 실무협상이 먼저 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톱다운’식 해법에만 전념하던 이상론에서 탈피, 한·미 동맹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라는 현실을 이전보다 더 감안한 것으로 들린다. 이 발언이 대북정책의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오는 28∼2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전후해 펼쳐질 동북아 외교전에서 문 대통령의 ‘현실성’이 가미된 한국판 ‘노르딕 외교’를 기대해본다.

boyoung22@
신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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