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오심 계기
통상 3명이 중계방송 화면 검토
리플레이운영관, 최적각도 찾아
비디오판독 2명은 문제 발생때
주심에게 ‘온 필드 리뷰’ 권유
VAR 결과는 ‘참고자료’ 일뿐
주심이 최종판정 결정권 가져
선수·스태프 요청은 용납 안돼
이번 U20 월드컵선 51게임중
VAR 통한 판정 번복 22차례
1986년 멕시코월드컵 아르헨티나-잉글랜드의 8강전. 당시 최고의 축구 스타였던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는 오랫동안 회자되는 ‘신의 손’을 연출했다.
0-0으로 맞선 후반 6분 마라도나가 귀중한 선제골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키가 작은 마라도나가 문전에서 펀칭하려던 잉글랜드 골키퍼 피터 실턴을 따돌리고 헤딩으로 득점을 올렸기 때문. 마라도나는 키 165㎝, 실턴은 183㎝. 아무리 탄력이 뛰어나더라도 자신보다 18㎝ 더 큰, 그것도 펀칭하기 위해 팔을 쭉 뻗은 골키퍼를 따돌리고 공중볼을 차지해 득점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당시 주심은 헤딩 득점을 인정했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마라도나가 머리가 아닌 왼팔로 공을 쳐 득점했다고 주심에게 어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신이 난 마라도나는 4분 뒤 추가골을 넣었다. 아르헨티나는 2-1로 승리했다. 마라도나는 8강전 직후 “머리로 약간, 신의 손으로 약간”이라고 언급해 논란을 부추겼고, 2002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나는 당시 논란의 득점을 ‘신의 손’으로 정의했지만, 그것은 잉글랜드인들로부터 지갑을 훔치는 행위와 같았다”고 핸드볼 파울을 인정했다.
그런데 더 이상 신의 손은 없다. 당시와 달리 영상 장비가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당시 마라도나의 핸드볼 반칙을 영상으론 도저히 ‘적발’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라운드 안에서 벌어지는 일거수일투족을 선명하게 동영상과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는 발달한 영상 장비로 인해 오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잉글랜드-독일의 16강전이 오심에 반발하는 계기가 됐다. 잉글랜드의 프랭크 램퍼드가 슈팅한 공이 크로스바에 맞고 골라인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튕겨 나왔다. 방송 중계 화면으론 명백한 득점이었지만 주심은 노골을 선언했고 기세가 꺾인 잉글랜드는 1-4로 패했다. 오심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고 제프 블라터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오심을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2012년 첨단 장비로 득점 여부를 확인하는 골라인 판독 시스템이 도입됐다. 비디오판독(VAR·Video Assistant Referees)의 일종이다. 초당 수백 프레임을 찍는 고성능 카메라를 이용해 득점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골라인 판독 시스템은 페널티킥, 반칙 등 다른 판정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2016년 VAR가 탄생했다. 그해 11월 열린 FIFA 클럽월드컵에서 VAR가 시범 운영됐고 2018년 열린 러시아월드컵에서 VAR를 전면 도입했다.
VAR는 득점 여부와 페널티킥, 레드카드에 따른 퇴장(경고 누적 미적용), 경고 혹은 퇴장의 잘못된 적용 등 4가지를 따지는 데 동원된다.
VAR를 위해 통상 3명이 그라운드 밖에서 영상을 살펴본다. 비디오판독 심판 2명, 최적의 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찾는 리플레이 운영관 1명이 VAR를 지원한다. 비디오판독 심판과 리플레이 운영관은 별도로 마련된 장소에서 영상을 확인, VAR 적용 대상인지를 파악한다. 해당 경기를 중계방송하는 카메라의 영상은 하나도 빠짐없이 VAR에 활용된다. 비디오판독 심판과 리플레이 운영관은 중계방송 화면으로 전파를 타지 않는 영상까지 VAR를 위해 확보하고, 필요한 장면을 선택해 자세하게 보고 또 본다. 그래서 ‘시야’가 넓다.
비디오판독 심판은 문제 장면이나 판정이 있었다고 판단하면 무선 교신 장비, 즉 헤드셋을 통해 주심에게 ‘온 필드 리뷰’를 권유한다. 온 필드 리뷰란 주심이 경기장 중앙 출입구 근처의 모니터를 통해 직접 영상을 확인하는 걸 뜻한다.
주심은 온 필드 리뷰를 하기 전 휘슬을 불고 손으로 ‘TV’를 의미하는 사각형을 표시한다. 주심이 온 필드 리뷰를 하게 되면, 비디오판독 심판은 주심이 최적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중계 영상을 경기장 중앙 출입구 근처의 모니터에 제공한다. 주심은 온 필드 리뷰를 한 뒤 최종적으로 판정할 때도 휘슬을 불고 손으로 사각형을 그려야 한다.
VAR는 ‘참고자료’다. 주심은 최종 판정의 결정권을 지니고 있기에 비디오판독 심판의 조언을 무시하고 VAR를 외면할 수도 있다. 반대로 주심이 비디오판독 심판의 권유 없이 VAR를 실시할 수 있고, 온 필드 리뷰 과정 없이 비디오판독 심판의 조언을 받아들여 판정을 번복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주심은 비디오판독 심판의 권유가 있으면 온 필드 리뷰를 실시한다. 자칫 오심으로 인해 심판의 가장 큰 덕목이자 자질인 객관성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VAR 도입 초기엔 판정 번복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러시아월드컵부터 전광판을 통해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선수, 코칭스태프, 팀 관계자들이 온 필드 리뷰, 즉 VAR를 요청하는 건 용납되지 않고, 이들은 VAR를 의미하는 사각형을 손으로 그리면 경고카드를 받을 수 있다.
폴란드에서 끝난 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은 VAR로 인해 웃었다. 지난 16일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에서 전반 5분 VAR를 거쳐 페널티킥을 얻어 선취득점을 올렸다. 준우승을 차지한 대표팀은 9일 세네갈과의 8강전, 5일 일본과의 16강전에선 VAR로 실점이 취소되는 행운을 누렸다. 특히 8강전에선 VAR가 7차례나 실시됐고, 그중 5차례는 판정 번복으로 이어졌다. 승부차기 마지막이 VAR의 하이라이트. 오세훈(아산 무궁화)의 슈팅이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지만, 주심은 VAR를 거쳐 오세훈에게 다시 기회를 줬다. 골키퍼가 오세훈이 슈팅하기 전 양발을 지면에서 떼고 움직인 게 카메라에 포착됐기 때문. 오세훈은 두 번째 슈팅은 놓치지 않았고 대표팀은 3-2의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FIFA에 따르면 20세 이하 월드컵 전체 52경기 중 결승전을 제외한 51게임에서 VAR를 통한 판정 번복이 22차례 있었다. 22회의 오심을 바로잡은 덕분에 판정 정확도는 99.8%에 달했다.
마시모 부사카 FIFA 심판위원장은 “우리의 철학은 공정한 축구 경기를 존중하는 것”이라며 “(VAR는) 전문적인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고, 우리도 VAR를 위해 (선수들처럼) 훈련한다”고 설명했다.
허종호 기자 sportshe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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