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글로벌 100대기업에서
3년 만에 500위 밖으로 밀려나
文정부 2년 시가총액 10兆 증발
주주 42만, 외국인 지분은 27%
수익 못 내면 경영 책임도 져야
탈원전 추종 3년 뒤 심판 대상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2000’ 기업 순위에 2016년 한국은 100위권에 두 개의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18위)와 한국전력(97위)이다. 글로벌 전력회사 중 100대 기업은 한전이 유일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138위, 2018년 295위로 뒷걸음질하더니 급기야 올해엔 588위로 5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시장의 판단은 더 냉혹하다. 2016년 6만3600원까지 갔던 주가는 21일 2만6200원이다. 40조 원에 이르던 시가총액은 16조 원대로 주저앉았고, 문 정부 출범일 기준으로는 10조 원 훨씬 넘게 허공으로 사라졌다. 기업은 실적으로 말한다. 2016년 12조 원 넘는 영업이익을 내며 ‘돈을 너무 벌어간다’는 얘기까지 들었던 한전(韓電)은 지난해 적자 전환했고, 올 1분기에만 6299억 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 기간 부채비율은 143%에서 173%로 치솟았다. 세계에 자랑하던 초우량 기업이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는 데는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전은 국내에서 몇 안 되는 100년 기업이다. 1898년 1월 26일 문을 연 한성전기가 전신이고, 이날은 한전 창립기념일이다. 1961년 5·16 직후 조선전업·남선전기와 합쳐 한국전력주식회사가 됐다. 1982년 정부 전액출자로 공기업으로 전환했고, 1989년과 1994년 국내 증시와 뉴욕증시에 상장됐다. 한전은 산업은행과 정부가 51% 지분을 갖고 있지만, 일반 주주도 42만 명이다. 외국인 지분은 26.7%다. 공기업은 공공성을 추구하면서도 시장에서 경쟁해 이윤을 내야 하는 기업이다. 공기업이라도 부실화하면 주주의 투자 실패로 귀결되고, 최종적으로는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21일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개편안 처리를 보류한 것은 정부와 주주 사이에 끼인 경영진의 곤혹스러운 선택이다. 7∼8월에 전기료를 깎아주는 새 방안으론 한전이 매년 3000억 원 추가 부담을 떠안는다. 설상가상이다. 그러잖아도 5000억 원 넘게 들어가는 문 대통령 공약 사업 ‘한전 공대’ 혹이 붙어 있고, 강원도 고성 산불 피해 배상 문제도 남아 있다. 소액주주들은 진작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공언한 터다.
꼭 2년 전 문 대통령은 탈핵·탈원전을 선언했고, 이후 한전의 운명은 바뀌었다. 탈원전으로 원전 가동률이 떨어졌고, 원전보다 값비싼 LNG 등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수입가격마저 오르면서 궁지에 몰렸다. 한전의 설계·시공·건설·기자재 수준은 세계 최고다. 그걸 무기로 국제 원전 수주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가, 탈원전 이후 줄줄이 제동이 걸렸다. 국내에선 탈원전, 외국엔 원전 수출이란 이율배반 정책 기조가 글로벌 무대에서 통할 리 없다.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는 전기료 인상을 전제로 한다. 저렴한 발전 수단 대신 3배 가까이 비싸고 불안정하기까지 한 것을 취하면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는 건 초등학생도 안다. 그런데도 문 정부는 임기 중 전기료 인상은 없다고 잡아뗀다. 거짓말 아니면 다음 정부와 미래세대에 책임 미루기다. 그것도 모자라 전기료 깎아주기에 나선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여당의 생색에 한전은 골병이 들어간다. 문 정부는 탈원전 이후 전력 확보와 전기료 문제에 대답이 궁해지자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전력 수요 감축’을 내걸었다. 그래놓고 전력소비를 늘릴 전기료 인하안을 들고 나왔으니 자가당착이다. 한전이 지난해 원가 이하로 판 전기가 4조7000억 원이다. 백번 양보해 탈원전이 옳다면 전기료 인상이란 정공법을 써야 하는데, 한전의 팔만 비트는 형국이다.
문 정부의 경제 실정을 다룬 기사에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아 큰 호응을 얻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3년이 지나 있으면 좋겠다.’ 한전 경영진의 심정도 아마 그럴 것이다. 정부 말을 거역하기 힘든 현실에서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은 고액 보험을 들고, 로펌에 법률자문을 일삼는다. 책임 회피용이다. 정부는 지난해 한전과 한수원이 적자로 추락했는데도 양호하다며 B등급을 줬다. 탈원전, 전기료 등 정책의 총대를 멘 보상이다. 하지만 3년 후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국익을 걷어차고 국민 부담을 늘린 정책의 기획·실행자는 감사와 국정조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등의 죄목으로 수사를 받게 될 소지가 크다. 재앙이 더 커지기 전에 바로잡아야 하고, 한전 또한 용기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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