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트로 흑인 때리는 모습봤다”
수용시설,기존 4배 인원 생활
음식·치료 못 받아 환경 열악

이달 아동 7명 국경넘다 사망
언론 “희생자 대다수 어린이”


이른바 ‘미국판 쿠르디’로 불리는 엘살바도르 부녀 사망 사건이 전 세계에 충격을 준 가운데 멕시코 국경지대의 이민자들이 처한 환경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자 수용 시설에서 이들은 적절한 음식과 의료를 제공받지 못하며 일부는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주민들이 국경을 넘다 사망하는 사건도 증가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아동들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멕시코 현지 언론 엘 우니베르살에 따르면 멕시코 이민청(INM)이 제공하는 이주민 구금 시설에서 자신을 파비올라라고 밝힌 아이티 여성은 두 살배기 아이가 아프다며 “아픈 아들을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소리쳤다. 칠레에서 온 한 여성은 “많은 아이가 아프다”며 “내 아들도 마찬가지인데 며칠 동안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했다”고 말하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멕시코 경찰에게 맞았다고 주장한 한 남성은 “구타와 폭언에 시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온두라스 출신의 이민자는 “흰옷을 입은 사설 보안대원이 벨트로 흑인을 때리는 모습을 봤다”며 인종차별 문제도 지적했다. 이민자 수가 급증하면서 이주민 시설에서 인간적인 생활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멕시코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멕시코 남부 이주민 수용 시설에는 본래 수용 인원의 약 4배에 해당하는 인원이 생활하고 있다.

엘살바도르 부녀 외에도 이달에만 7명의 영유아가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던 중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텍사스주 당국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가로지르던 두 명의 영아와 한 명의 유아를 포함한 가족 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23일 텍사스 사법당국 관계자는 “남부 리오그란데 강 인근에서 어린이 세 명이 숨진 것을 발견했다”며 “이들이 열에 노출되고 탈수현상을 겪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달 초에는 애리조나주 서부에서 인도에서 온 6세 소녀가 숨졌다. 지난 4월에는 온두라스 출신 아동 3명이 리오그란데 강 인근 델 리오에서 사망했다. 도강 중 사망자가 늘어남에 따라 수상 구조활동도 급증하고 있는데 멕시코 현지 언론은 희생자들의 다수가 어린이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주민 문제에 멕시코 당국과 미국 정부, 이주민들의 고국인 중남미 국가들에 모두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엘 우니베르살은 멕시코 정부가 이민자들을 환영한다고 발표하며 이들에게 취업 기회와 좋은 대우가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해 이민자들의 유입을 늘렸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에 대해서는 이민 허가를 받으려면 2~3년이 걸리는 엄격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동시에 입국을 시도하려는 이민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정부에 대해서는 자국민들이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 이들을 위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침묵을 유지한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민자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관련국들이 인권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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