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이디어가 고갈된 디자이너를 위한 책 : 그래픽 디자인 편 / 스티븐 헬러, 게일 앤더슨 지음, 홍주연 옮김 / 더숲
푸틴 얼굴에 ‘텍스트 콧수염’
히틀러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
흑백사진 위의 빨간 핏자국은
시선 집중시키는 효과 불러
거장 50인이 만든 작품 담아
대중 눈 사로잡는 비법 제시

분야는 달라도 긴 글보다 한 장의 이미지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강렬한 인상을 줄 때가 있다. 광고, 출판, 잡지, 홍보대행사 등의 수많은 디자이너는 ‘어떻게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인가?’라는 아이디어에 대한 고민이 항시 떠나지 않는다. 이런 분야뿐 아니라 독창성과 상상력을 통한 새로움과 혁신은 대개 현대의 기업과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에게 따라다니는 화두다. ‘혁신적 아이디어’는 어느 분야건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북리뷰’가 잘 고르지 않던 디자인 책을 선정한 이유다.
33년간 ‘뉴욕타임스’의 아트디렉터로 디자인과 대중문화에 관한 170권이 넘는 저서를 집필한 스티븐 헬러와 ‘롤링스톤’지의 수석 아트디렉터를 지낸 게일 앤더슨이 지은 이 책은 세계적인 거장 50인이 만든, 디자인 역사에서 손꼽히는 작품과 아이디어를 담았다. 작품마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포인트와 키워드는 아이디어의 고갈로 길을 잃은 디자이너에게 다양한 실마리를 준다.
예컨대 ‘아이러니’라는 키워드로 책에 등장하는 미국의 데이비드 그레이가 디자인한 ‘디 애드버킷’ 잡지의 2014년 표지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의 윗입술 위에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이란 헤드라인을 마치 아돌프 히틀러의 콧수염과 비슷한 형태로 넣었다. 그레이는 직접적으로 푸틴을 제2의 히틀러로 칭하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푸틴이 세계와 자국민에게 취하고 있는 위협적인 태도를 히틀러와 견줘 바라보게 이끌린다. 디자이너가 아이러니를 의도할 때 가장 효과적인 도구 중 하나는 시각적 유희다. 성공적인 아이러니는 정보와 함께 오래 기억에 남게 되는 웃음도 전해준다.
인쇄 기법의 하나인 ‘별색’(別色)이란 포인트로 소개된 캐나다의 데이비드 드러먼드가 디자인한 ‘현대의 남자다움’이란 책의 표지는 남성의 얼굴을 찍은 흑백 사진에서 휴지 조각 위의 핏자국에만 색을 넣었다. 흑백 사진과 절제된 타이포그래피는 작은 핏자국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기껏해야 면도하다 벤 자국 차이에 불과하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 포인트의 강렬함이 다른 효과들에 가려지지 않도록 어떤 요소를 빼야 할지를 정하는 것도 디자이너가 내려야 하는 힘든 결정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대개 창의적 아이디어도 이와 같다.
‘감정’을 키워드로 소개한 존 하트필드의 1928년 독일 공산당의 선거 포스터 ‘손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다’는 20세기 가장 강렬한 감정적 디자인의 하나다. 치켜든 지저분한 노동자의 손은 나치당에 대한 승리를 절박하게 잡으려는 것처럼 펼쳐져 있다. 정치인이 아니라 유권자를 내세운 대담한 선거 포스터로, 모든 유권자에게 본능적으로 의미를 이해하게 한다. 책은 “감정적인 작품을 작정하고 만들려 하면 실패하기 마련”이라며 “발산되는 감정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메시지와 아이디어에 몰두한 결과여야 한다”고 말한다. 128쪽, 1만4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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