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교육학

송광사에 ‘出家’ 신청한지 보름
합격증을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공양·참선·철야정진·1080배…
법정 스님에게 ‘침묵 의미’ 배워

바르게 살라는 마지막 가르침
그 캄캄한 밤 무척이나 그립다


조계산의 차갑고 세찬 계곡물이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져 흐르던 그 캄캄한 밤을 잊을 수 없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경복궁을 찾았다. 녹음이 우거진 고궁을 거닐다 보니 머리가 한결 맑아졌다. 건춘문을 나섰다. 동십자각 방향으로 걷다가 불교 서점이 눈에 띄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맑은 향 내음이 나를 맞이한다.

당시 명상에 관심이 많았다. 명상 관련 책들을 살펴보다가 한쪽 코너에서 전남 송광사에서 발행한 신문을 발견했다. 판형도 독특하고 활자체도 부드러웠다. 신문을 펼쳤다. 하단에 ‘출가 4박 5일’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출가는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수행 생활에 들어간다’는 뜻인데, 출가 4박 5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니 산사에서 스님들과 똑같이 닷새 동안 생활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출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신청서를 작성해 송광사로 보냈다. 보름 만에 답장이 왔다. ‘동참을 허가한다’는 합격증이 온 것이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고속버스를 타고 전남 순천에 도착했다.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송광사로 향했다.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하나다. 열여섯 분의 국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도량이다.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해 고승들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울창한 전나무 숲이 나를 맞았다. 종무소에는 수련회 참가자들로 북적였다. 바구니가 하나씩 건네졌다. 속세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집어넣으라는 것이다. 소지품을 모두 꺼내 넣었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도 풀어 넣어라 한다. 세속의 시간을 잊고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라는 뜻이다. 잿빛 수련복 한 벌, 흰 고무신 한 켤레, 회색 방석 한 개를 받아 들었다. 수련 기간에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전달됐다. ‘절대 침묵’이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무조건 퇴소’였다. 수련생들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수련복으로 갈아입었다. 수련할 곳은 송광사 천 년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자루’였다. 사자처럼 용맹스럽게 정진하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본격적인 수련은 새벽부터 시작됐다. 도량을 청정하게 한다는 도량석 의식이 행해졌다. 이어서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을 깨우기 위해 법고와 범종이 울렸다. 목어와 운판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렸다. 수련생들은 대웅전에 모여 스님들과 함께 예불을 드렸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함께 소리 내어 읊을 때는 마치 새로운 세상에 들어서기라도 한 듯이 신비로웠다.

아침 공양 시간이다. 공양은 부처님께 음식을 올리고 밥을 먹는 것이다. 공양은 몸을 살찌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도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발우 속에 든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발우를 씻은 물까지 다 마셨다. 오전에는 스님들에게 강의를 들었고, 오후에는 참선을 했다. 참선은 결가부좌로 했는데 매번 무릎이 터져 나가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참선할 때는 꼭 잠이 쏟아졌다. 스님께 합장한 채 고개를 숙인다. 그러면 죽비로 내 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출가 4박 5일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차를 나누며’ 시간이다. 수련회를 총책임지고 있는 원장 스님이 등장했다. 바로 법정 스님이었다. 꼿꼿한 자세와 군더더기 없는 말씀으로 침묵의 의미를 바르게 일깨워 주셨다. 말씀이 끝나자 단맛 나는 여름 과일과 향기로운 차가 나왔다. 금세 분위기가 환하게 밝아졌다.

바로 그때, 갑자기 전갈이 들어왔다. 사흘 내내 쏟아진 폭우 때문에 계곡 물이 불어 식수를 끌어 올리던 양수기가 떠내려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스님들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양수기를 구하러 마을로 내려갔다고 한다. 또 전갈이 들어왔다. 전남 지역에 내린 집중 호우로 많은 사람이 실종되고, 송광사는 고립됐다고 했다. 수련생들이 웅성거리며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계곡에서 휩쓸려 내려온 큰 바위들이 사자루 기둥을 마구 때렸다. 수련장 사자루가 심하게 흔들렸다.

극히 불안한 가운데 철야 정진이 시작됐다. 수련생들의 눈빛에는 비장한 각오가 서렸다. 오늘 밤에는 1080배 절을 해야 한다. 지도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다 함께 큰 소리로 “석가모니불!”이라 외치며 절을 하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속옷은 물론 수련복과 방석까지도 흥건히 젖었다. 무릎 통증은 사라진 지 오래다. 마비된 무릎은 기계처럼 움직였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른다.

어느덧 먼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철야 정진이 끝났다는 목탁 소리가 울렸다. 모두 그 힘들다는 철야 용맹정진을 해낸 것이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흐느끼는 소리, 엉엉 우는 소리, 통곡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연일 쏟아지던 비도 멈췄다. 음식을 담아 먹던 발우도 깨끗이 닦았다. 수련복도 곱게 접어 반납했다. 다시 속세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바구니에 담았던 소지품도 돌려 받았다. 시곗바늘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막상 일상 속으로 돌아가려니 내키지 않았다. 이런 우리에게 법정 스님은 귀한 선물을 주셨다. 참선하는 모습을 그린 둥근 부채였다. 다시 속세로 돌아가면 이곳 송광사에서의 출가 4박 5일을 기억하며 바르게 살라는 마지막 가르침 같았다. 그해 여름, 송광사에서 보낸 출가 4박 5일은 내 생애에서 가장 잊지 못할 날들이었다. 그 캄캄한 밤이 무척이나 그립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