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범 사회부 차장

초등학교 사회 과목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주당 평균 3시간가량이다. 매주 5일의 수업일 가운데 적어도 3일은 사회 과목을 배운다는 얘기다. 사회 과목 비중이 큰 이유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존재로 태어나지만, 사회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존재로 바뀐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민주 시민을 기르기 위해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통합한 것’으로 사회과목을 규정한다.

사회 교과서가 중요한 이유다. 지난해만 해도 사회 교과서를 통해 역사와 문화, 가치 등을 배운 초등학교 6학년 학생 수는 40여만 명에 달했다. 이쯤 되면 단순히 책 한 권이 아니다. 이들 청소년이 사회와 국가, 역사, 공동체 등을 바라보고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돕는 ‘틀’이라고 봐야 한다. 그만큼 토씨 하나 고치는 일도 무겁게 봐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법조문을 고치는 것만큼이나 무겁게 다뤄야 한다.

하지만 2018년도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가 고쳐지는 과정은 너무나 가벼웠다. 대전지검이 지난 5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사문서 위조교사’ 등의 혐의로 교육부 공무원 A를 불구속 기소한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 공무원이 ‘자문위원’ ‘내용 전문가’ ‘심의위원’ 등을 선임하고 연구·책임 집필자의 눈을 피해 인장까지 도용하면서 무려 213곳을 뜯어고치는 데는 4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 ‘바람막이’로 동원된 외부인 수만 해도 20명에 이른다. 자문위원 5명, 내용 전문가 6명, 심의위원 9명으로 핵심 역할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얼굴 없는 심판과 선수’다. 특히 출판사가 심의위원 9명의 이름을 ‘심의진’ 명단에 추가하려 하자, A는 이를 막아섰다. 임의로 심의위원을 선정해 교과서를 새 정부 입장에 맞춰 수정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수사검사의 결론이었다. 자문위원, 내용 전문가 가운데는 참여연대 출신 교수, 친여성향 단체 회원 등이 포함돼 있었다. 사실상 정치권 인사다.

‘얼굴 없는 심판과 선수’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 현장 곳곳에 등장한다. 최근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취소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활동한 평가위원도 마찬가지다. 당장 오는 7월 9일 전후로 13곳의 자사고에 대해 취소 여부를 대거 발표할 예정인 서울시 교육청도 예외가 아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27일 기자들과 만나 “20명의 외부 평가위원을 공개하면 개인 신상털기나 불필요한 논란이 될 여지가 많다”며 비공개 방침을 시사했다. 공정한 평가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자사고 지정취소에 교육부 장관이 동의할지를 결정할 ‘지정위원 10명’의 명단도 비밀이다.

자칫 심판에게 가해질 외압을 막겠다는 것일 거다. 하지만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고 공정하다면 굳이 결과가 나온 사후에도 심판 명단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혹시 ‘편향성’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때문은 아닌가. 주요 교육 정책마다 수사하고 판결까지 하는 ‘원님 재판’을 하면서 편향성을 검증할 방법마저 틀어막는다면 과연 민주 시민은 어떻게 기르라는 말인가.

frog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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