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러 관공서에서 서류의 예문으로 많이 사용되는 이름이 홍길동이다. 홍길동전에서 그는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새로운 세상으로 찾아 율도국으로 떠난다. 율도국의 위치에 대한 갑론을박은 있지만 가장 유력하게 지목되는 곳이 오키나와(沖繩)로 불리는 류큐(琉球) 지역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유구라는 명칭으로 기록됐다. 한때 조선을 형으로 따르며 명과 왜보다도 우선시했고 조선도 류큐를 가까이하며 형제의 나라로 지냈다. 류큐는 일본의 조선 침략을 명나라에 미리 알렸고 일본이 필요했던 물자 징발에도 소극적으로 임해 나중에 침략을 받는 불운의 나라다.

1598년 12월 조선 침략의 실패로 일본은 혼란을 겪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은 상태에서 그의 추종세력인 서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추종세력인 동군 간의 다툼은 후자의 승리로 끝나 1603년에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將軍)에 취임하고 에도(江戶)에 막부를 설치 후 나라를 통치하게 된다.

규슈(九州)의 남부 가고시마(鹿兒島)현 위치에 있던 사쓰마(薩摩)번의 시마즈(島津) 가문은 서군에 참여했다가 패전하지만 이에야스의 배려로 다스리던 영지를 계속 다스릴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1608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사쓰마는 류큐에 에도막부와의 교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1609년 3월 초 80척의 선박에 3000여 명의 군대를 싣고 류큐를 침략한다.

침략을 당한 류큐는 사쓰마에게 식량을 비롯한 각종 무기와 보물들을 빼앗기게 된다. 이때 사쓰마가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물품 중 하나가 바로 ‘포성’이라고 불리는 아와모리(泡盛) 소주였다. 포성은 거품이 있다는 뜻으로 일본에 편입된 상태라서 일본 소주로 불리지만 엄연히 일본과 만드는 방식이 다른 류큐의 증류 방식이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술빚기와 다르게 쌀 없이 물과 누룩으로만 발효해서 얻은 술로 증류하는 것이 특징이다.

증류 기술을 태국으로부터 받아들인 탓에 안남미에 아와모리의 흑국균을 배양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후에 나무증류기로 소주를 만들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일본인들이 아와모리 소주를 즐기기 위해 기호에 따라 차와 얼음, 음료, 물을 넣어 마시는데 계절에 따라 물의 온도를 조절해서 넣고 ‘시쿠와사’라고 불리는 류큐 지역의 레몬을 넣어 마시기도 한다.

일본은 원래 본토인 혼슈(本州), 방석처럼 생긴 시코쿠(四國), 발부분인 규슈(九州) 등 3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 이후에 러시아의 남하 견제를 핑계로 아이누족을 짓밟아 홋카이도(北海道)라고 했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류큐를 침략해 프랑스, 네덜란드, 아메리카와의 외교단절을 요구하고 포고령을 내려 오키나와로 불렀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본토의 피해를 막기 위해 오키나와에 방어선을 구축한 일본으로 인해 연합군과 100일간의 전투에서 오키나와는 양조장을 비롯한 모든 게 파괴되지만 다행히 곧바로 흑국을 복원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조선은 광복을 맞이하지만 아이누와 류큐는 그렇지 못했다. 두 지역은 현재도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고 있다. 지금도 류큐는 류큐왕국의 후손임을 내세우며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단체를 조직하고 오키나와가 아닌 류큐로 다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술칼럼니스트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