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영화 관람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1억 명을 넘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고 일상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문화활동이 영화 관람이니 당연한 결과 같기도 하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2018 문화 향수 실태조사’에서도 영화관람은 응답자의 75.8%를 차지해 한국인이 가장 자주 하는 문화활동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 등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꼭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 변화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만은 아니다.
올해 상반기 이처럼 ‘당연하지만은 않은 결과’는 예상치 못한 흥행작이나 늘어난 중년 관객 덕분이지만 가장 큰 힘은 바로 디즈니이다. 디즈니가 인수한 마블 스튜디오의 ‘캡틴 마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흥행 성공에 이어 5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알라딘’은 800만 명을 돌파했다.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4’도 200만 명을 넘어섰다. 곧 실사 애니메이션 ‘라이언킹’도 관객을 찾을 예정이어서 올해는 디즈니의 해가 될 것 같다.
꿈과 판타지 세계의 대명사로 여겨지다 한때 시대 감각에 뒤떨어진다며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던 디즈니의 오랜 모색이 정점을 찍는 듯하다. 배우 키라 나이틀리가 지난해 세 살짜리 딸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와 ‘인어공주’를 금지시켰다는 소식은 한동안 디즈니에 쏟아진 비판의 핵심을 보여준다. 디즈니 공주들이 보여주는 수동적인 여성상, 선한 성격의 백인만이 주인공을 도맡는 인종주의적 한계, 가족주의 등이 결합돼 ‘보수적 세계관’의 첨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름답고 착한 여성이 미모라는 매력 자본 하나로 왕자와 결혼해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전통적인 ‘디즈니 월드’가 대중의 공감을 받는 데 실패하자 디즈니는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인어공주(1989), 뮬란(1998), 겨울왕국(2014) 등을 통해 끊임없이 여성 캐릭터에 대한 진화를 모색하며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감수성을 녹여내는 한편, 다양한 인종의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다양성이라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폴리네시안, 흑인 히어로에 이어 ‘캡틴 마블’에서는 마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단독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올해 최고 히트작이 될 ‘알라딘’에 이르러서 주인공 재스민은 드디어 여자는 술탄이 될 수 없다는 왕국의 오랜 룰을 깨고 자신의 힘으로 여왕이 된다. 토이스토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야기의 주제도 디즈니 왕국의 오랜 상징이던 판타지나 로맨스보다는 현실적 인간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쪽으로 옮겨갔다.
이 같은 디즈니 행보에 대한 비판도 있다. 기계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다 보니 원작의 매력을 훼손했다는 비판이다. 그런 점이 없지 않지만 빠르게 변하는 시대적 감수성과 관객들의 높아진 감각에 맞추려는 디즈니의 구애가 놀랍기만 하다. 디즈니의 행보를 보며 여전히 출생의 비밀과 악녀가 등장하는 주말극, 비슷한 이야기를 비슷하게 풀어놓는 로맨스물, 구태의연한 포맷을 반복하는 오락프로그램들, 뻔한 선악 구도에 얄팍한 사회적 시선을 버무린 흔한 한국 영화가 떠오른다. 우리도 뜨거운 구애를 받고 싶다.
c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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