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을 찾아서 정철훈 지음 / 삼인

시인 백석(1912∼1996)은 한국 시문학의 큰 산맥이다. 84세까지 살았던 그가 시 산맥을 이룬 시기는 짧다.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까지다. 해방 이후 북한 평양에 살았던 그는 체제 옹호보다는 문학의 자율성에 더 마음을 줬다. 시를 쓰지 않는 대신에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거나 동화시(童話詩)를 써서 문학적으로 연명(延命)했다. 1959년 삼수군 협동조합으로 축출돼 양치기로 일하게 된 그는 당에 대한 충성을 표현한 시를 조선작가동맹 기관지에 싣는다. 시라기보다는 내 가족만큼은 살게 해 달라고 간청한 호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백석이 걸작들을 써냈던 만주에서의 행적을 중심으로 전 생애를 살피고 있다. 그가 1940년부터 5년간 만주에 머물며 쓴 시들은 대륙을 떠도는 자의 내면 정조를 쓸쓸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저널리스트이자 시인인 정철훈은 “백석에게 동북아 시인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 유학을 통해 영어를 익히고 식민지 경성에서 신문기자를 하다가 만주로 건너가 러시아어를 배우며 북관 방언으로 시를 쓴 시인에게 그런 위상 부여가 마땅하다는 것이다.

근년에 백석을 다룬 연구서와 평전이 쏟아졌다. 정철훈의 책이 그것과 다른 지점은, 만주를 직접 일주일간 돌아보며 백석의 행로를 탐사했다는 것이다. 창춘(長春)과 단둥(丹東)에서 다민족 풍속들을 겪으며 백석 시에 들어 있는 혼혈적 정서를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저자가 만주국 마지막 황제 푸이의 위황궁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객지에서 혼자 명절을 맞은 백석의 마음을 짚어볼 때 읽는 이도 더불어 쓸쓸해진다.

이 책은 백석의 만주행이 기생 출신 여성 자야와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탓이기도 하지만, 러시아어를 배우겠다는 젊은 문학인의 열망도 한몫했다는 것을 당대 문화 풍경을 통해 밝히고 있다. 백석의 러시아어 실력은 그로 하여금 해방 후에 소련이 진주한 북한에 머물게 하는 까닭이 되고, 더 이상 시를 못 쓰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니 인생은 이토록 아이러니한 것이다.

이 책은 백석이 1940년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를 그만둔 것은 창씨개명을 거부했기 때문임을 강조한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시인의 자존을 지키고자 했던 것. 백석은 뒤에 창씨개명을 하지만, 친일 작품은 쓰지 않는다.

책은 또한 백석이 타계하며 “내 원고를 불태우라”고 했다는 걸 전한다. 말년에 김일성에게 굴종한 것을 지우고자 했던 것일까. 백석의 의도를 정확히 알려면 그의 북한 행적을 직접 탐사할 수 있는 시간이 와야 할 것이다. 496쪽, 2만5000원.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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