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 경제산업부 부장

바쁜 일상 속에 주말 장보기는 사라지고 택배를 이용하는 횟수가 늘었다. 특히 새벽 배송이라며 전날 밤늦게 주문한 물건이 다음 날 꼭두새벽에 문 앞에 얌전하게 와 있는 광고도 자주 보인다. 새벽 배달시장을 개척한 벤처기업을 따라잡으려 대기업도 뛰어들었다기에 실험 삼아 주문을 해보았다. 정말 몇 시간 전에 스마트폰으로 콕콕 누른 쇼핑 물품이 어김없이 도착해 있는 게 아닌가. 편리하다는 생각보다 ‘먹고 살기 힘들구나’ 한탄부터 나왔다. 내가 주문한 물건을 번개같이 담아 총알같이 날라온 이들의 보이지 않는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선 다른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배달된 달걀이며 채소를 주섬주섬 냉장고에 집어넣고 난 뒤 남은 포장재의 양에 질렸다. 새벽 배송의 신선도를 유지하려는 목적인 듯 야쿠르트 아줌마의 백 비슷한 대형 보랭백 안에 드라이아이스 봉지가 서너 개. 그리고 물품마다 따로 비닐로 꽁꽁 묶여 있었다. 5만 원 남짓한 주문에 포장 값만 몇 천 원 들었을 것 같다.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과잉 포장을 줄일 길은 없을까.

전 세계의 콘텐츠 혁명을 주도 중인 넷플릭스에는 영화, 드라마 말고 인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많다. 그중 하나가 일본의 정리 정돈 전문가 곤도 마리에(近藤麻理惠)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다. 불가 구도자의 수행 자세를 연상케 하는 ‘미니멀(minimal) 라이프’ 철학이다. 최소를 뜻하는 미니멈(minimum)에서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스트 같은 단어들이 파생돼 나왔다. 사실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미니멀리즘 자체가 불교 선(禪) 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우리에겐 법정 스님의 ‘무소유’처럼 익숙한 개념이지만, 자본주의의 물질 세례를 받은 서구인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일본인도 ‘단샤리(斷捨離)’라고 해서 요가의 행법(行法)인 단행(斷行), 사행(捨行), 리행(離行)을 정리 정돈에 도입해 ‘불필요한 물건의 유입을 끊고(斷),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捨), 물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離)’을 실천하자는 운동이 크게 유행했다. 결핍보다 과잉에 익숙한 현대문명의 단면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후기 정보화 사회에는 과잉 물질보다 과잉 정보가 더 큰 문제다. 물질은 덜 소유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폼이 나 보이겠지만 정보는 너도나도 더 소유하려 난리다. 기업은 맞춤형 마케팅을 한다며 소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한다. 빅데이터라며 공개된 정보는 물론,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검색 등에 기록된 디지털 지문까지 수집한다. 정보는 약과 독의 두 얼굴이 있기에 우리는 기업에 가려 쓰는 지혜와 자제력을 요구하고 있다. 개인도 ‘정보=자산’의 신(新) 격언에 따라 다다익선 쪽으로 쏠린다. 트위터, 블로그의 팔로어, 이웃 등 디지털 인맥 쌓기에 열중하는 세태도 마찬가지다. 숫자에 집착하는 이런 고질병을 고치려 SNS 다이어트를 선언하는 이들도 느는 추세다. 기계는 쓰레기 정보라도 대량 학습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은 양질의 정보를 걸러 받아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이 선별한 고급 정보를 최소한으로 받아 활용하는 미니멀 인포메이션 라이프가 일반화할 것이다.

no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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