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과 협상도 전쟁도 어려워
클린턴·오바마 공습 시도 중단
부시, 北 정권 교체 시도도 단념
트럼프, 재선·평화상 카드 이용
북한 모르고 우선순위도 밀려
진영 넘어 대북정책 뜻 모아야
2015년 초, 국제사회에 영향력이 큰 고위 인사가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2013년 11월 이란과 핵 협정을 타결한 데 이어 2014년 12월에는 쿠바와의 관계도 정상화했다. 2009년 취임하자마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당위성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았다. 고위 인사는 오바마에게 말했다. “역사적 업적을 두 개나 세웠다. 이제 딱 하나 남았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만나 핵 문제를 해결해 보자”. 오바마는 잠시 침묵하다 한마디 했다고 한다. “그는 미친 사람이다.(He’s a crazy man)”
오바마도 북한 문제를 외면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고, 공격도 검토했던 것으로 임기 후 밝혀졌다. 똑똑한 오바마는 깨달았을 것이다. 북한과는 협상도, 전쟁도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전략적 인내’라는 말로 부작위를 포장했다. 오바마 임기에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회귀’와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이 시작됐다.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려면 북핵 문제 지속이 미국에 나쁘지 않다는 분석이 미·중 양쪽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미국이 북한과 핵 협상을 시작한 것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이다. 그 전까지 북핵은 남북 간의 문제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영변 핵 시설 폭격도 검토했지만, 결국 1994년 핵 사찰과 경수로 건설을 주고받는 제네바 합의가 이뤄졌다. 2000년에는 조명록 북한군 차수가 워싱턴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평양을 교차 방문하면서 수교 직전까지 갔다. 클린턴은 그해 말에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중동 문제를 먼저 해결해 달라고 애원하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때문에 포기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북핵 해결 과정을 돌이켜 볼 때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2001년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 행정부와 반대였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북한 핵 폐기를 넘어 아예 김정일 정권을 교체하려 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면서 중동에 시간과 자원을 집중했고 북핵 문제는 중국, 일본, 러시아를 끌어들인 6자회담을 통해 해결해 보려 했다. 협상은 춤을 췄고, 합의와 파기가 반복됐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주류였던 네오콘(신자유주의자)들은 괘념치 않았다. “한반도는 중동에 비하면 안정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악수한 뒤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을 보며 이번에도 북 핵·미사일 폐기는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내년 재선과 노벨 평화상 수상에 이용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 같다. 두 개의 이벤트 카드가 있다. 김정은의 워싱턴 방문과 트럼프의 평양 방문이다. 플루토늄·고농축우라늄(HEU)·삼중수소 같은 어려운 용어보다는 ‘괴짜’와 독재자가 포옹하는 그림이 훨씬 미 유권자들의 눈과 마음을 잡을 것이다. 또 다른 고려도 하고 있을지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배제된 ‘자유의 집’ 미·북 정상 회동에는 트럼프의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도 참석했다고 한다. 트럼프 일가와 김정은 일가가 ‘패밀리 비즈니스’를 도모하는 것일까? 사업가인 트럼프는 본능적으로 독재자에게 얻어낼 것이 많음을 안다.
판문점 회동의 결과로 미·북 실무협상이 예고됐다. 핵 동결, 연락사무소 설치 얘기도 나온다. 1994년부터 되풀이했던 것들이다. 미국과 북한은 역사의 물레방아를 끊임없이 돌리고 있을 뿐이다. 클린턴·부시·오바마·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트럼프 이후 북한에 더 대립적 정권이 들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잘 모르고, 중동에 비해 우선순위가 떨어지며, 중국과 연계돼 있고, 무엇보다 절실하게 많은 양보를 하면서 북한 핵을 완전히 제거해야 할 이유가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문 대통령은 미·북에 결정권을 넘긴 듯하다. 좌파에서는 ‘민족의 핵’이라는 칭송이, 우파에서는 독자적 핵 무장 주장이 나온다. 공동체의 뜻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데, 진영 갈등이 너무 크다. 현재로서는 대책이 없어 보인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와 2022년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치열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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