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평 논설위원

누군가 기름값이 묘하다고 했지만, 전기값도 그렇다. ‘콩이 두부보다 비싸다’는 비유는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의 레퍼토리다. 지난해만 해도 전기를 원가 이하로 판 손실분이 4조7000억 원이다. 정상 판매했다면 6년 만의 적자를 면하고도 남을 큰 액수다. 전기도 상품이다. 상품시장에선 많이 구매하면 혜택을 주는 게 상례지만, 전기는 거꾸로다. 많이 살수록 덤터기를 쓴다. 한국 전기료엔 빈부 개념이 들어 있다. 소득세율보다 가파른 징벌적 누진 구조다.

1차 오일쇼크를 겪고 1974년 도입한 전기료 누진제는 1970년대 말 2차 오일쇼크 때 12단계, 19.7배까지 확대됐다. 같은 전기를 쓰면서 20배 가까이 비싼 요금을 문 것이다. 이후 6단계 11.7배가 유지되다 2016년 3단계 3배로 누진 폭이 줄었다. 이때 저소득층 보호 명분으로 등장한 것이 필수사용량 보장 공제다. 누진제 제1구간에 해당하는 월 200kwh 이하 사용자를 대상으로 월 2500∼4000원 할인해준다. 상품을 파는 기업이, 덜 쓴다는 이유로 값을 깎아주는 희한한 방식이다. 그러나 실제 적용 가구 중 진짜 취약계층은 2% 정도다. 연봉 2억 원의 한전 김 사장도 할인 대상자다.

필수사용량 공제로 지난해 958만 가구가 3964억 원의 혜택을 받았다. 이와 별도로 장애인·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3자녀 이상·출산 가구 등 335만 가구가 숱한 이유로 월 1만∼2만 원가량을 덜 낸다. 누진제에다 상품과 무관한 복지까지 반영되면서 전기료는 누더기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왜곡을 바로잡긴커녕 7∼8월 한시 전기료 인하를 선택했다. 누진제를 없애면 1416만 가구의 부담이 늘어나지만, 정부 안으론 더 내는 가구가 전혀 없다. ‘배임 소송’ 공포에 시달리는 한전 경영진은 수용하는 대신 필수사용량 공제와 누진제, 원가 이하 요금체계 등을 손봐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정부와 교감을 거친 이 방안은 전기료 인상과 직결된다. 그러나 시행 시기는 총선이 끝나는 내년 하반기다. 속 보이는 행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전기료를 정부가 틀어쥐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스라엘·멕시코 정도다. 민간에 개방하면 경쟁을 통해 통신료처럼 소비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다. 탈원전으로 발전단가를 높여 놓고 전기료는 깎아준다는 식의 속임수와 포퓰리즘으론 전기료 요지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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