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영희 교장 “허위 없는 사회”
당시 구국 운동으로까지 확산
재학생 65%·졸업생 97%가
“양심적 생활에도 도움 됐다”
‘쌍둥이 자매’사건뒤 더 주목
전국 중·고교 17곳 벤치마킹
교사인 아버지와 공모해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쌍둥이 자매’에 대한 네티즌들의 공분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청와대 게시판에는 지금도 해당 학교의 성적 조작 의혹을 수사해 달라는 청원과 함께 이참에 대학입시에서 내신 성적을 반영하지 말자는 의견도 올라온다.
앞서 법원은 지난 5월에 있었던 1심 재판에서 이들 쌍둥이 자매의 아버지 A(52) 교사에게 징역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A 교사의 범행이 해당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의 공정성까지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만들어 교육 현장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며 중형을 판결했다.
일각에서는 A 교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 교사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똑같이 시험문제를 유출했을 것이라며 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도록 하는 ‘상피(相避)제’ 도입을 추진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또 교사의 문제 유출 없이 족집게 과외는 불가능할 것이란 의구심과 함께 학교에서 학원에 출제문제 유형을 제공하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여겨진다.
5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시·도교육청이 관할 초·중·고를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평가와 관련한 감사에서 지적된 부적정 사례는 모두 1703건으로 이 중 특정 참고서 인용과 과도한 기출문제 출제 등 시험문제와 관련한 내용이 513건(30%)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학교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와 관련한 사례가 422건(25%), 수행평가와 관련해서는 356건(21%), 복수답안 등 평가결과 처리는 326건(19%) 순으로 지적됐다. 반면 시험감독 교사의 부적정 사례는 17건(1%)으로 가장 적었다. 이 밖에 학생의 부정행위는 기타 사례 67건(4%)에 포함돼 정확히 얼마인지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학생평가에 대한 부적정 사례가 시험을 치르는 당일 고사장(교실)보다 이전의 시험문제 출제단계와 이후 채점단계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점에서 60년 넘게 ‘무감독 시험’을 시행해 온 인천 제물포고 사례는 학생평가에 대한 본보기로 주목된다. 이 학교가 1956년 처음 무감독 시험을 치렀을 때 전교생 569명 중 53명이 60점 이하를 받아 낙제했다. 당시 교장이었던 길영희(1900∼1984) 선생은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들 낙제생을 오히려 칭찬하고, 무감독 시험을 ‘허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국 운동으로까지 확산시켰다.
이 학교 동문이 무감독 시험 60년을 기념해 발간한 책자에서는 ‘무감독 시험이 양심적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설문에 재학생은 65.1%가, 졸업생은 97.3%가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답한 것으로 소개됐다. 또 무감독 시험의 전통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재학생 32.4%가 ‘교사와 학생의 노력’이라고 답했다. 다음으로 ‘선배들이 지킨 전통을 따라야 한다’는 응답이 27.9%로 많았다. 이 학교에선 또 주인 없는 양심매점도 운영된다. 매점에 놓인 모금함에 들어온 금액을 갖고 학생들의 양심지수가 평가된다. 판매된 물건값과 모금함 금액이 같았던 지난주 이 학교의 양심지수는 ‘아주 맑음’이었다.
최근 이 학교의 ‘무감독 시험’ 제도를 벤치마킹해 도입하는 학교도 늘어, 전국적으로 17개 중·고등학교에서 같은 방식의 시험제도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무감독 시험을 도입했다가 중단한 사례도 있다. 경남 포항제철고와 대구 사수중은 지난 2014년과 2017년에 각각 무감독 시험을 운영했다가 1년도 안 돼 중단했다. 교사의 감독 없이 시험을 치를 경우 오히려 학생들의 시험 집중도가 떨어져 성적 하향이 불 보듯 뻔하다는 학부모의 항의 때문이었다. 또 한편에선 무감독 시험이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부추겨 내신조차 신뢰할 수 없게 될 것이란 우려 섞인 시선도 있었다.
고보현 인하대 책임입학사정관은 “무감독 시험이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치러진다면 대학 입시에서 학생들의 양심까지 플러스로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지건태 기자 jus216@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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