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느리의 한

1970년대 한국영화 산업이 대대적인 불황기를 겪으며 장르의 다양성이 대폭 줄었다. 1960년대에 황금기를 누린 멜로드라마가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는 동시에 기존 멜로드라마에 에로티시즘을 가미한 호스티스 물이 새로운 흥행 강자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영, 이용민, 박윤교 같은 감독들은 스릴러와 호러를 꾸준히 제작하며 한 길을 걸었다. 그중에서도 박윤교 감독의 활약, 혹은 영화적 자취는 동시대 컬트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김기영 감독에 비해 조명받지 못했다.

박 감독은 ‘뜬 구름아 말 물어보자’(1966)라는 멜로드라마로 데뷔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공포영화 ‘백골령의 마검’(1969)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인 공포영화 연출자로 활동했다. ‘며느리의 한’(1972·사진) ‘옥녀의 한’(1972) ‘꼬마신랑의 한’(1973) ‘낭자한’(1974)으로 이어지는 그의 ‘한 시리즈’는 대대적인 히트는 아니지만 지방극장과 재개봉관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그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박윤교표’ 공포영화는 두드러지는 에로티시즘으로 여타 다른 귀신영화들과 차별화된다. ‘한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며느리의 한’은 공포 장르에 에로티시즘을 녹여 넣은 박 감독의 첫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당시 한국영화로는 보기 드문 옴니버스 형태를 띠고 있으며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짧은 미니 단편이다. 이야기는 막 혼인한 부부의 귀향길을 그린다. 식을 올리고 새신랑의 집으로 가던 도중 이들은 도적 떼를 만나고 겁에 질린 신랑은 신부를 버리고, 혼자 도망친다. 도적 떼 두목에게 겁탈당하려는 순간, 신부는 혀를 물고 자살한다. 한편 도망친 신랑은 날이 어두워지자 한 폐가에 당도하는데 이곳에는 죽은 신부와 똑같이 생긴 과부가 살고 있다. 과부는 낯선 남자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를 유혹한다. 결정적으로 과부의 알몸을 본 후 흑심을 품은 신랑은 과부의 방으로 침입하고, 과부는 자신이 죽은 신부의 귀신임을 밝히며 그를 저승으로 끌고 간다.

김효정 영화평론가
김효정 영화평론가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공녀(윤미라)는 마구종의 딸로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김만서 대감 부인(사미자)의 간청을 받아 씨받이로 팔려가게 된다. 부인에게는 관심도 없던 김 대감은 밤마다 공녀의 처소를 찾아 밤을 보낸다. 공녀의 방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정사 장면은 모두 거울을 통해 반사된 이미지로만 보인다. 공녀는 중간중간 거울에 비친 자신과 김 대감의 모습을 또렷이 응시한다. 특이한 것은 정사 장면에서 김 대감의 얼굴은 과감히 생략되고 화면의 대부분이 황홀경에 빠져 있는 공녀의 표정, 그리고 때때로 여러 다른 각도의 거울 속 자신의 이미지를 직시하는 공녀의 시선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귀신 영화에 ‘끼어 있는’ 섹스 신이라고 여기기엔 꽤 공들인 흔적이 보이는, 미학적이고 포르노그래피적 실험으로 가득한 시퀀스이기도 하다.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귀신이 되고 난 이후 공녀가 보여주는 행보다. 아이를 낳자마자 김 대감의 부인과 그의 하녀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공녀는 원혼이 돼 돌아온다. 그러나 앞에 예로 든 공포영화에서의 여귀와는 달리 공녀의 우선순위는 복수가 아닌 정(情)을 맺은 대감의 육신이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복수를 하기 이전에 일단 대감과 밤을 보내기 위해 그의 방으로 향한다. 혼비백산한 김 대감 앞에서 공녀는 절을 하고 대감의 몸을 파고든다. 억울하게 죽은 한보다 풀리지 않은 욕망이 그에게는 더 급한 ‘용무’인 것이다.

박 감독의 ‘한 시리즈’에서 발현된 작법, 예컨대 귀신으로 거듭나면서 더해지는 여성의 욕망, 그리고 여성의 시선을 이용한 욕망의 표현 등은 그의 후기 작품인 ‘망령의 곡’(1980)에서도 반복되고 대중적으로도 흥행을 거둔다. 그의 공포영화로 본격화된 에로티시즘의 차용은 1980년대 흥행작으로 이어지며 확장됐다. 그가 특화한 에로티시즘의 시각적, 내러티브적 재현은 당대 공포영화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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