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 혹은 놋쇠, 망치로 두들겨
문고리·경첩·자물쇠·감잡이 등
목가구에 쓰이는 장식물 제작
초교 마치고 15세부터 쇠만져
직원 100명 주물공장 첫 직장
풀무·굴림판 각종 도구 잘다뤄
복원 광화문 현판제작도 참여
목조건물이나 목가구에는 으레 금속장식이 있기 마련이다. 금속 장식은 건물이나 가구의 기능을 보강하는 실용적 목적 외에 장식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 문고리나 경첩, 자물쇠, 감잡이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장식을 총칭해 장석(裝錫)이라고 한다. 두석장(豆錫匠)이란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황동 혹은 놋쇠를 망치로 두들겨 장석물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
박문열(70) 장인은 국가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보유자다. 박 보유자는 농장석, 궤장석, 의걸이장석, 벼락닫이장석, 모반장석, 전통장석 등의 각종 장석과 자물쇠를 만든다. 나비, 박쥐, 물고기, 새, 식물, 십장생, 문자(回·亞·福·壽·乙자), 만(卍)자 등 장석의 문양도 직접 정을 쪼아 만든다.
특히 비밀자물쇠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박 보유자는 1993년 전승공예대전에서 7단 비밀자물쇠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받으며 공예업계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2000년 7월 22일 국가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 보유자로 인정됐다.
비밀자물쇠와 관련해서는 이 같은 일화도 있다. 그는 자물쇠로 전승공예대전에서 승부를 보기로 하고 경남 진주의 태정박물관을 찾았다. 거기서 19세기 초 단조기법으로 제작된 7단 비밀 자물쇠를 발견했다. 7단 자물쇠란 일곱 단계를 거쳐야 열리는 자물쇠를 말한다. 당시 박물관은 자물쇠를 눈으로 보는 것만 허락해 10여 분 관찰 후 머릿속으로 그 형태를 그려 집에 돌아왔고 나흘간의 칩거 끝에 결국 7단 비밀자물쇠를 재현해 냈다.
“비밀자물쇠란 열쇠 구멍이 보이지 않는 자물쇠를 말합니다. 7단 자물쇠는 장식처럼 보이는 광두정(대갈못)을 살짝 밀어야 열쇠 구멍이 나타나고 열쇠를 집어넣고 다시 각도와 방향을 바꾸어가며 밀고 돌리고, 이렇게 일곱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열 수 있죠. 처음 접한 사람은 열쇠가 있어도 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사대부 집안에서만 비밀자물쇠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박 보유자는 현재 8단 비밀자물쇠까지 제작하고 있다. 비밀자물쇠의 경우 현대사회에서도 중요 물품 보관 시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박 보유자는 “현대는 현대의 맛이 있고, 용도가 다르다”며 “경복궁 같은 고궁에 잠금장치를 하면서 현대 자물쇠를 달면 안 되기 때문에 전통 자물쇠 제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보유자는 1949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목수였던 아버지가 휴전 이듬해 세상을 뜨고 가족이 무작정 상경하는 바람에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 속에 초등학교를 마쳤고 15세 때부터 쇠를 만져야 했다. 용산에 있는 삼흥주물공장이 첫 직장이었다. 직원이 100여 명이나 되는 공장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주물기법을 익혔다. 박 보유자가 본격적으로 장석 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동문당에서부터였다.
“동문당으로 옮긴 것은 주조공장에서의 고생이 너무 심해 장석을 배워 보라는 권유를 따른 것이었어요. 지금이야 장석을 찾는 이가 많지 않지만, 당시에도 자물쇠를 만들어달라는 주문보다는 수리해 달라거나 자물쇠는 있는데 열쇠가 없다며 열쇠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작업을 할 때는 화덕, 풀무, 각종 집게, 도가니, 거푸집, 그음쇠, 끄심쇠, 정, 망치, 모룻돌, 말음쇠, 작두, 줄, 굴림판 등 각종 도구가 동원된다. 각종 도구를 잘 다룰 줄 알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오랜 기간의 숙련이 필요하다. 박 보유자는 현재 장석 제작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통건축 보수 현장에서 필요한 철물을 제작하고 현장에서 직접 설치도 한다. 균열로 복원이 불가피한 광화문 현판 제작에도 박 보유자는 관여하고 있다. 최근 박 보유자가 시험 제작한 광화문의 ‘광’ 자는 나무판 위에 동판으로 글자를 붙이고 그 위에 금박을 입힌 것이다.
또 얼마 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 이재만 보유자와 함께 ‘왕후의 경대’라는 작품을 공동 제작, LG생활건강에 납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보유자는 6년 전 작업실을 경기 고양시 벽제에서 파주시로 옮겼다.
“1990년대 초까지는 생계에 급급했습니다. 이제는 일이 즐겁습니다. 학교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도 보람 있고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운영 중인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 장석반을 개설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는 넉넉지 않지만 전통공예인의 삶을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다.”
파주=글·사진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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