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4개월 전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언급한 ‘비자발급 정지’ 발언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과연 일본의 경제 보복이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는 비자면제국 지위 박탈 등의 조치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일본이 한 해 754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 관광객을 안 받겠다거나 골라 받겠다는 건 한국에 대한 ‘보복’이라기보다는, 자국 관광산업과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자해’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관광객 감소와 경기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 한국인 비자 면제 중단은 일본이 절대 꺼낼 수 없는 카드다.
일본을 찾는 외래 관광객 4명 중 1명이 한국인이고, 해외여행을 가는 한국인 4명 중 1명이 일본으로 간다. 만일 한국의 비자 면제국 지위를 박탈한다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2020년까지 4000만 명의 관광객 유치 목표 달성은 물 건너간다. 여행사, 항공, 호텔, 면세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 48.3%가 줄어들면서 관광업계가 빈사 상태에 빠졌던 우리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일본의 외래 관광객 유치 확대 정책 뒤에는 ‘인구 감소’ 문제가 있다. 일본에서 인구 1명이 줄 때마다 연간 소비액 125만 엔이 사라진다. 줄어드는 인구 1명의 소비는 외래 관광객 8명이 대체한다. 이를 내국인(일본인) 소비로 채운다면 25명의 숙박관광이나 80명의 당일관광 소비가 이뤄져야 한다. 만일 비자 규제로 방일 한국인이 400만 명이 줄어든다면 일본은 인구 50만 명분 소비가 감소하고, 이를 메우려면 국내 숙박관광객 1250만 명이나 당일 관광객 4000만 명이 늘어야 한다. 결론은 관광 비자 제한은 일본의 보복 수단이 아니라, 외려 우리가 쓸 수 있는 무기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양국 국민이 교류하는 관광 분야를 국가 간 보복이나 반격의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 특히 한 해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주고받으며 시장 규모가 성장하는 역내(域內) 국가 사이에서는 더 그렇다. 정치적 갈등이 심해질수록 민간의 여행과 교류는 유지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다. 정부의 헛기침에 관광객이 뚝 끊어지는 중국의 사드 보복 사례에서 중국 사회의 수준을 볼 수 있지 않았던가.
한국인이 일본 여행을 많이 간다는 건 그만큼 일본 소비시장에서 한국 관광객의 영향력이 크다는 말이기도 하다. 높은 영향력과 지위는 때로 상황을 바꾼다. 지난 주말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공연이 그걸 시사한다. 방탄소년단의 공연 실황은 일본 공중파 방송인 니혼TV(NTV)로 방송됐다. 멤버 중 1명이 원폭 투하 그림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시행된 방탄소년단의 일본 공중파 TV 출연 금지 조치가 슬그머니 풀린 것이다. 주목할 것은 애초부터 방탄소년단에게 ‘방송 출연 금지’란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에게 일본 TV 출연은 시혜가 아니었고, 방송 출연의 주도권은 ‘저쪽’이 아니라 ‘이쪽’에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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